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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첸중가원정대] 29일 셀파 다와의 시신 운구예정

중앙일보

입력

베이스캠프로 내려온 칸첸중가원정대는 26일 하루를 쉬고 27일에도 장비정리를 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현재 사다 셀파 다와의 시신이 캠프2에 있는 관계로 운행을 중단하고 있는 원정대는 인도와 스위스 셀파들의 협조를 얻어 29일까지 시신을 베이스캠프로 내린 후 헬기로 카트만두까지 운구할 예정이다.

엄홍길대장은 “다와의 시신을 처리한 후 운행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며 “현재 상황으로는 캠프3∼4구간에 길을 내기가 무척 어렵기때문에 인도·스위스·영국과 합동으로 등반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현재의 상태를 감안할 때 한국원정대의 재등정 일자는 다음달 7∼8일께로 예정되고 있다.카트만두에서는 사다의 시신을 운구하기 위해 베이스 캠프로 들어오는 헬기편에 식량과 연료를 운반하기로 했다.

한편 인도원정대는 26일 저녁 한국원정대를 초청해 한국대가 당한 불상사에 대해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달했다.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멤버중 한명이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산소통과 레규레이터를 빌려 줘 어려운 상황을 넘길 수 있었던 점에 대해서도 감사의 마음을 전달했다.

※루트개척하다 숨진 셀파 다와는 누구인가
지난 22일 캠프4를 개척하던중 불의의 사고로 숨진 셀파 다와의 죽음은 한국원정대에게는 큰 충격을 안겨줬다.

지난해 안나푸르나 원정에서 처음 만났을 때 앙 다와 다망(당시 29)은 “셀파도 히말라야 8천m 고봉등정을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등정하는 사람의 영원한 조연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된다는 사실”이라며 셀파의 위치를 설명했었다.

지난해 가을과 올해 한국 칸첸중가(8천5백86m)원정대의 사다 셀파(셀파의 우두머리)로 활동했던 다와는 8차례의 히말라야 8천m 고봉을 한국원정대와 같이 올라 국내 산악계에는 널리 알려진 셀파다.

지난 해 칸첸중가원정시에는 캠프Ⅳ로 오르는 루트를 개척하다 눈사태를 맞고 경사 70도나 되는 설사면을 따라 2백50m정도 추락을 했었다. 오른손바닥은 물론 허벅지가 깊이 패여 헬기로 후송됐었다.

그는 "한도규(37·전남연맹)·현명근대원(32·KBS기자)이 '불귀의 객'이 된 것과 비교하면 더 없는 행운이었지만 추락하는 순간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길었던 것같다."고 당시의 어려움을 설명하기도 했다.

셀파는 정상적인 등반기술을 익히지는 않았지만 고소적응이 뛰어나고 강인한 체력을 소유해 히말라야를 등정하는 산악인에게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다. 포터나 키친보이의 마지막 꿈은 셀파다. 생명에 대한 위험부담은 많지만 수입이 늘고 위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네팔의 샐러리맨 한달 봉급은 1백달러정도.1년에 두세번 원정대와 생활하는 셀파는 한번 원정에서 장비비포함 1천5백달러정도를 벌어들이며 등정에 성공하면 원정대에 따라 약간의 보너스까지 챙기게 된다.

다와도 포터와 키친보이를 거쳐 20살때부터 셀파생활을 시작했다.에베레스트(8천8백48m·3회)·안나푸르나(3회)·마나슬루(8천1백63m·1회)·낭가파르밧(8천1백25m·1회)를 한국원정대와 함께 올랐다.

그에게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정과 엄홍길대장이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고 중상을 입었던 98년 안나푸르나등정이 셀파생활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난해에는 대한산악연맹의 초청으로 3명의 셀파와 함께 도봉산 어택캠프에서 암벽기술을 교육받았으며 교육이 끝난 후에는 지난해 칸첸중가 한국원정대의 팀닥터로 네팔을 찾았던 문영식(안양성모병원)원장에게 정밀검사를 받기도 했었다.

당시 한국을 찾아 "한국인은 다정다감하기 때문에 외국원정대보다 일하기가 편하다”며"‘작은 탱크’ 엄홍길대장이 14좌를 완등하는 순간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하던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한데 이제는 불귀의 객이 됐으니 가슴이 저며오는듯 하다. 슬하에 7살난 딸과 3살난 아들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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