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생선을 먼저 올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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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한병구 DHL익스프레스코리아 대표(가운데)가 새로운 광고를 알리기 위해 수퍼맨 스타일의 복장을 하고 하늘을 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상한 생선과 싱싱한 생선이 있으면 상한 생선을 먼저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아야 합니다. 국제 특송 기업의 특성상 문제가 있으면 빨리 소통해야지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더욱 커지기 때문입니다.”

 한병구(54) DHL익스프레스코리아 대표가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직원들에게 줄기차게 강조한 ‘상한 생선’론이다. 그는 지난해 한국법인 설립 9년 만에 한국인으로 처음 대표를 맡았다. DHL익스프레스코리아는 국내 업체인 일양익스프레스가 1977~2001년 대리점 형태로 운영했었다. 그런데 DHL 독일 본사가 2001년 한국 법인을 설립한 뒤에는 외국인이 대표를 맡아 왔다.

 그는 “취임 이후 1년 동안 자주 강조하다 보니 ‘싱싱한 생선’보다 ‘상한 생선’을 먼저 올려놓는 직원이 많아졌다”며 “더욱 기쁜 건 상한 생선 자체가 크게 줄었다는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임직원 간 소통이 늘다 보니 직원의 회사 만족도 역시 높아졌다. 본사에서 평가하는 한국법인의 직원 만족도가 한 대표 취임 전 50점 수준에서 지금은 80점으로 향상됐다. ‘상한 생선’이 선언적 담론이라면 직원들의 불만·고충 사안 접수 및 처리 방식을 확 바꾼 것은 한 대표가 도입한 구체적인 소통 정책이다. 그동안 직원들은 불만이 있으면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을 통해 내용을 올렸다. 과거 불만 사안은 담당 부서에만 전달됐다. 그런데 한 대표는 불만 사안을 자신을 포함한 모든 임원에게도 전달되도록 시스템을 바꿨다.

 회계사 출신으로 재무 전문가인 한 대표는 “업계에서 재무 출신 최고경영자(CEO)를 숫자에 민감한 냉혈한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꼭 그렇지는 않다”며 “나는 숫자를 분석하기에 앞서 숫자를 다루는 사람을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재무 출신 CEO가 다양한 경영 지표를 빠르게 파악해 숫자가 보여주는 현황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며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강점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DHL코리아는 이달 1일부터 ‘DHL 직원은 모두 국제 특송 전문가’라는 새로운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DHL을 상징하는 노란색의 강렬한 빛이 세계를 빠르게 누비는 모습을 주요 컨셉트로 잡았다. 광고에 앞서 지난해 말부터 올 3월까지 DHL코리아 직원 1100여 명이 모두 국제 특송 전문가 과정(CIS)을 마쳤다.

 한 대표는 “직원들에게 자신이 담당한 업무뿐만 아니라 국제 특송의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생각할 수 있도록 교육시켰다”며 “고객에게 더욱 좋은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강병철 기자

◆DHL익스프레스=1969년 애드리언 댈시, 래리 힐브럼, 로버트 린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동 창업한 회사. 항공기를 이용해 하와이 호놀룰루까지 물류를 배달하기 시작했다. 2001년 독일 도이체포스트에 인수됐다. 220개국에서 항공 특송을 중심으로 다양한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매출액은 110억 유로(약 16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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