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줄이는 묘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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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호 18면

우리나라 노숙인은 세계노숙인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건강이나 위생상태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좋은 편이다. 선진국의 경우 마약중독자나 정신질환자가 많고 대중목욕탕이나 화장실에 접근하기 어려워 한국보다 훨씬 더 더럽고 병들어 보인다. 한국은 경제적 문제나 가족과의 불화로 노숙인이 되는 경우가 많아 비교적 깔끔하게 관리하는 노숙인도 적지 않다. 웬만한 직업과 가정을 갖고 있었지만 빚 독촉에 시달리거나 사기를 친 후 거리에 나앉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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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은 게으르고 무책임한 사람, 더러워도 씻지 않는 사람 같은 이미지를 쉽게 떠올린다. 반면 경쟁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밀려난 무력한 사람, 불황의 희생자 등 피해자로 보는 이들도 있다. 혼잣말을 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 등 전형적인 정신병 증상을 보이는 이들도 있어 무섭다는 사람들도 있다. 원래 술 문제가 있어서 노숙인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추위, 만성적 통증, 부끄러움 등 때문에 거리에 내몰린 다음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또 성격장애 등 치료해야 할 심각한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다. 노숙인이 성폭력의 가해자나 희생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떤 이들은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차마 돌아가지 못할 죄를 짓고 난 후, 또 어떤 이들은 반대로 집이나 조직의 속박이 싫어 거리를 떠돈다. 가족 없이 고아로 성장해 일용잡급직으로 살다 병이 들어 일을 하지 못해 노숙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거리에 내몰리는 사연들은 단순하게 한 묶음으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는 얘기다. 노숙인을 일률적으로 시설에 수용하는 것이 해답이 되지 않는 이유다. 재활해 경제적으로 독립할 희망이 없다면 누가 시설에 갇혀 무료하게 살고 싶겠는가. 물론 잘 가르쳐줘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하니 사회사업가, 심리학자, 작업치료사, 직업훈련 전문가, 의사 등이 팀을 이루어 다각적 접근을 해야 한다. 가난은 나라님도 어쩔 수 없다고 한 것은 못살던 예전 시대 이야기이고,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지금은 달라져야 할 터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영자신문을 보고 커피를 마시는 노숙 할머니에 대한 기사가 화제가 된 적도 있었지만, 지금부터 이삼십 년 후 오히려 그런 경우가 지금보다 더 흔해지지 않을까 싶다.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을 해 봤지만 손해만 보고, 결혼은 하지 않은 채 나이만 들어버린다면 결국 노숙자로 생을 마칠 확률이 높다.

카다피도, 후세인도 권좌에서 쫓겨난 후엔 노숙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실제로 노숙인의 잡지 빅 이슈의 수기들을 보면 한때 대리석을 깐 집에서 산 이들도 있다 한다. 왕후장상의 피나 각설이의 피가 뭐 그리 다르겠는가. 융 심리학에서는 자신이 거지가 되는 경험을 무의식이나 의식에서 제대로 해야 진정한 자기 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세상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손에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 봉착해 보아야 진짜 자기를 대면해 깊이 있게 성장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무의식에서 상징적으로 ‘거지 됨’을 경험하는 것과 현실에서 거리로 내몰리는 것은 다른 얘기다. 서울역, 터미널 등에서 쫓겨난 노숙인은 날이 추워지면 당장 생명에 위협을 받는다. 그들에게 심리학자의 고담준론은 그저 공허한 말의 성찬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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