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일자리가 문제였다 미국·유럽 주가 급락, 장기채값 사상 최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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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호 20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부 크렌쇼크리스천센터에서 열린 일자리박람회(job fair)에서 구직자들이 CBS 부스 앞에 줄 지어 서 있다. [로스앤젤레스 AP=연합뉴스]

이날 발표된 지난달 일자리수 집계 결과는 당초 6만 개 증가할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예상에 크게 못 미친다. 대형 이동통신업체 버라이즌의 파업 사태로 통신 분야에서 일자리가 4만7300개 줄고, 재정난에 시달리는 주 정부에서도 고용을 줄인 결과로 풀이된다. 컨설팅업체 캐피털이코노믹스의 폴 애시워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가 성장세를 이어가려면 매달 15만 개 안팎의 일자리가 생겨야 한다”며 “지난달 신규 고용 정체는 경기 회복이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불길한 징조”라고 해석했다.

세계 경제에 드리운 더블딥 그림자

미국 국민도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있다. CNN은 지난달 말 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전문기관 ORC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2%가 ‘또 다른 경기침체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CNN의 여론조사 전문가 키팅 홀랜드 국장은 “응답자의 3분의 1은 ‘경기 침체가 심각하다’고 여기는 등 미국인들이 심한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고용 사정이 나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날 유럽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영국 FTSE100은 2.34% 떨어졌고, 프랑스 CAC40와 독일 DAX30 역시 각각 3.59%와 3.36% 내린 채 장을 마쳤다. 재정적자 감축 규모와 방법을 놓고 유럽연합(EU)과 그리스 정부가 이견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에 이미 흔들렸던 유럽 증시는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까지 겹치자 하락폭이 커진 것이다. 이어 열린 미국 증시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는 253.31포인트(2.20%) 하락한 11240.26에 거래를 마쳤다.

특히 금융주의 약세가 두드러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위기설이 나오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대해 “경영상황이 악화하면 실행할 ‘비상계획’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적 부진으로 올 들어 주가가 45% 떨어진 BOA는 최근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으로부터 50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미국 연방주택금융지원국(FHFA)은 모기지 증권의 가치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손실을 봤다며 BOA를 비롯한 17개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금융 분야의 흔들림은 여전한 상황이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국채 등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쏠리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10년만기 미국 국채 가격이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이날 뉴욕 채권시장에서 10년만기 국채의 수익률은 1.99%로 사상 처음으로 1%대를 기록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2월 인도분 금 선물값은 온스당 47.8달러(2.6%) 오른 1876.8달러로 마쳤다. 시간외에서는 추가로 더 올라 1880달러 선을 넘어섰다. 반면 10월물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은 배럴당 2.48달러(2.8%) 떨어진 86.45달러를 기록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8일 일자리 창출 방안을 포함한 경기부양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고용 확대에 상당한 예산을 배정하려는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을 의회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유럽에서는 추가 구제금융을 둘러싼 EU와 그리스의 줄다리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당초 EU·국제통화기금(IMF)·유럽중앙은행(ECB)의 트로이카는 5일까지 그리스 정부와 2차 구제금융 제공에 관한 협의를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올해 그리스의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8.6%에 달해 목표치(7.6%)를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2일부터 그리스 정부와 EU 등 트로이카 실사단의 논의가 중단됐다. 트로이카는 이날 공동성명에서 “그리스 정부가 내년 예산안과 개혁안을 구체적으로 완성할 수 있도록 시간을 더 주기로 했다”며 “열흘 안에 논의를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만일 그리스가 9월 중 차기 구제금융 집행분을 받지 못하면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질 수 있다.

그리스 문제는 기본적으로 유로화의 문제다. 경쟁력이 강한 독일·프랑스는 약한 유로의 덕을 보는 반면 그리스·포르투갈 등은 경기 침체에 따른 재정위기를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독일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 여기에 대한 독일 유권자의 선택이 주목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리스에 224억 유로, 유로존 전체에는 1476억 유로를 지원할 예정이다. 그는 4일 실시되는 독일 지방선거에서 이 문제를 핵심 의제로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ING그룹의 이코노미스트인 카르스텐 브레제스키는 “메르켈이 자신의 지역구가 있는 지역에서 치러지는 이번 선거를 통해 구제금융 정책의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고 해석했다. 독일 유권자들이 그리스 구제금융책에 반발하면서 메르켈은 올해 벌어진 다섯 번의 지방선거에서 모두 패배했다.

미국과 유럽의 지도자들이 명확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면 세계 경제는 다시 안갯속으로 잠길 수 있다. 베이징을 방문 중인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WB) 총재는 “막대한 국가부채와 저성장, 투자자 신뢰 저하로 올가을 세계 경제가 새로운 위험지대로 접어들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대우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이번 주에는 관망 또는 주식비중 축소의 전략을 권고한다”며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서 시장이 놀랄 만한 경기 부양책이 나올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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