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체증·주차난 ‘0’... 24시간 어디서나 차 빌려드립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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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호 04면

1 전기차를 충전하는 모습.

1980년대 말 스위스 학생들이 처음 시작했다는 카 셰어링은 유가상승 및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과 맞물려 전 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전기차를 이용한 카 셰어링은 요즘 자연스럽게 관심이 간다. 전기차 셰어링의 근본적인 취지는 언젠가 석유가 고갈되면 사용될 수밖에 없는 미래형 자동차와 미리 친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 매연 등 환경오염을 줄인다는 것, 교통과 주차난을 해결한다는 데 있다. 전기차 셰어링은 일반 카 셰어링과 달리 민간인들이 소규모로 운영하기 힘들다. 그 때문에 민간기업과 정부가 함께 렌터카의 형식으로 운영한다. 하지만 미래지향적이고 큰 수익이 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대기업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김성희의 유럽문화통신 : 이탈리아 밀라노의 전기차 셰어링 ‘이바이(e-vai)’ 서비스

밀라노시가 주관하는 전기차 셰어링 서비스는 ‘이바이(e-vai)’라 부른다. ‘e-vai’를 이탈리어로 발음하면 ‘에-바이’로 ‘그리고 출발!’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지속 가능한 움직임(sustainable mobility)’이라는 아이디어에 기초를 두고 만들어진 이 전기차 나눠 타기 서비스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이탈리아 북부 철도청 트레노르드, 북부 롬바르디아주의 대중교통회사 FNM그룹과 렌터카 전문회사인 칼레이도스 등이 함께 운영한다. 지방자치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운영되는 전기차 셰어링으로는 세계 최초가 아닐까 싶다.

2 ‘이바이(e-vai)’ 대여용 차량‘피아트 푼토 에보 비퓨엘’.

전기차 셰어링 시스템은 자전거 셰어링과 비슷하다. 한 차를 많은 사람이 하루에도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시내 운행 차량의 양을 줄이고, 사용 가능한 주차공간을 늘리며, 교통체증과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게다가 필요한 시간만큼만 사용하고 사용료를 지불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드는 비용이나 연료비·정비료·세금·보험료 등이 들지 않아 차를 자주 이용하지 않는 개인이나 외부활동이 많은 회사직원들에게 적합하다.

이 프로젝트는 2010년 12월 13일 밀라노 카도르나 기차역에서 처음 시작됐다. 그 후 2011년 1월 29일 바레제 북부역에, 그리고 4월 4일 코모 호수역으로 확대됐다. 7월 말부터는 밀라노의 말펜사와 리나테 공항에서도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 서비스는 1년 365일 24시간 사용 가능하고 무인 대여·반납이 가능해 밀라노를 중심으로 사용자가 늘고 있다.

백 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해보는 게 나은 법. 이바이의 공식 사이트(www.carsharing
-evai.it)에 들어가 개인 정보를 입력하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신청한 후 카드 번호와 주민번호, 면허증 번호를 쓰면 가입신청이 끝난다. 그 후 바로 확인 e-메일을 받는데 그곳에 적힌 e-메일 주소나 팩스 번호로 주민증과 면허증의 복사본을 보내야 등록이 완료된다.일단 등록을 했으니 사용하는 일만 남았다. 호수가 있고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재된 사크로 몬테가 있는 바레제에서 첫 서비스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인터넷(대표전화로도 예약 가능)으로 필요한 날짜와 시간·장소에 차를 예약했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당일 차를 이용하기 약 20분 전에 사용 코드와 대여받은 차 번호가 적힌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첫 대여라 일단 창구에 가서 직원에게 차를 예약했다고 말했고 직원은 내게 대여된 차 시트로앵 시 제로(CITROEN C-ZERO)로 데려갔다. 차는 충전을 마친 상태였지만 아직 충전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었다. 직원은 방금 전 받은 문자 뒤에 ‘APRI(열어줘)’라고 써서 그들이 지정한 번호로 문자를 전달해 보내라고 했다.

문자를 보낸 뒤 1분 정도 차 옆에서 기다리니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차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문자를 받은 통제소에서 원격조정으로 대여받을 차의 문을 열어 주는 것이다. 차문이 열리자 이바이 직원은 충전 케이블을 트렁크에 말아 넣고 출발해도 좋다고 했다. 충전 케이블은 항상 차와 함께 대여한다. 이유는 혹시라도 사용 중에 재충전이 필요할 경우를 위해서다. 다른 도시에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지만 밀라노에는 곳곳에 전기차 충전소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장시간 이용 시 배터리 충전이 필요하면 언제든 충전이 가능하다. 1시간 충전하면 약 7㎞를 갈 수 있으며 가득 충전이 되면 약 150㎞를 운행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직원이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차를 대여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밤 12시에 공항에 도착해 이바이 서비스를 사용하고 싶다면 어느 공항에서 받아서 어디에 반납할지를 미리 예약만 해놓으면 된다. 지정된 시간 20분 전 통제소에서 보낸 문자를 받으면 문자에 적힌 차번호를 찾아 ‘열어줘(Apri)’라고 문자를 되돌려 보낸다. 약 1분 후에 문이 열리고 글로브박스에서 열쇠를 꺼내 차를 사용한 후 지정된 주차장에 주차한다. 위성으로 차가 어디에 있는지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바이 주차장의 문이 닫힌 시간에도 주변 도로주차장에 세워 놓으면 다음 날 직원이 출근해 차를 이바이 주차장에 주차한다.

전기차는 모두 오토매틱이다. 유럽 사람이 아직도 대부분 수동 기어를 선호하는 것을 볼 때 매우 획기적인 것이다. 열쇠를 넣고 시동을 걸었는데 전기차라 그런지 스위치만 켜면 조용히 시동이 걸린다. 차는 매연도, 소리도 내지 않고 출발했다. 이 전기차로는 도시 중심, 버스와 택시, 심지어 거주자만 다닐 수 있는 거리도 맘껏 다닐 수 있다. 벌금이나 교통위반 딱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거주자만 주차할 수 있는 노란선 안이나 돈을 내고 주차할 수 있는 파란선 안에도 무료로 주차할 수 있다.

사용을 마치고 차를 대여받은 바레제 북부 기차역의 주차장에 반납했다. 실버에 등록했기 때문에 2시간 사용료(한 시간에 5유로·약 8000원)에 서비스료(5유로)를 포함한 15유로(약 2만4000원)를 지불했다. 온라인으로 예약할 때 이미 정산이 되었다. 대여를 받은 곳에 반납하기 때문에 추가비용을 내지 않았지만 행여 다른 곳(다른 도시, 혹은 공항)에 반납할 때는 15유로만 추가로 내면 된다. 반납한 후에도 똑같이 차 번호와 문자로 받은 코드, 그리고 끝에 ‘닫아줘(Chiudi)’라고 써서 문자를 보내니 약 1분 후에 차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이로써 서비스가 끝났다.


김성희씨는 밀라노를 무대로 활약 중인 보석디자이너다. 유럽을 돌며 각종 공연과 전시를 보는 게 취미이자 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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