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뿌리 공격하다 역풍, 미국 첫 유대인 부통령 꿈 좌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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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호 28면

미국 유대인은 약 650만 명이다. 미국 인구의 2.2% 정도다. 그런데 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함께 국제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찍어내는 초강대국이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세계를 선도했다. 유대인들은 바로 이 소프트파워를 중심으로 미국의 발전에 보완적인 기여를 했다. 유대인들은 소수라는 그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어 다민족 국가인 미국을 배경으로 특화된 분야에서 역량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해왔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콜걸 추문으로 뉴욕주지사 물러난 엘리엇 스피처

모든 것을 다 가져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미국 유대인들에게도 한 가지 숙원은 있다. 유대인 대통령 또는 부통령을 만드는 것이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부통령은 몇 명을 빼곤 거의 백인, 앵글로 색슨, 개신교도인 ‘와스프(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출신이다. 2000년 대선 때는 미 역사상 처음으로 유대인 부통령 후보가 나왔다. 코네티컷주 상원의원이자 폴란드계 정통파 유대인 조셉 리버먼이다. 그런데 당시 앨 고어 대통령 후보가 일반 득표에서는 승리했지만 플로리다주 선거인단 확보에 실패해 낙선하는 바람에 유대인 부통령 탄생은 무산됐다. 허탈한 미국 유대인들은 이후 리버먼을 이을 적절한 인물을 찾았다. 엘리엇 스피처(Elliot Spitzer·사진)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한때 유대 사회의 주목과 성원을 받았다.

스피처는 1959년 뉴욕 브롱스에서 태어났다. 부동산 재벌인 아버지는 폴란드-우크라이나계 유대인, 영어교사인 어머니는 팔레스타인계 유대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했던 그는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국제관계를 전공했다. 이어 하버드대 로스쿨에 진학해 박사 학위를 받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한다. 그는 잠시 뉴욕 유대계 로펌에서 근무하다 맨해튼 검찰청 강력부 검사로 임용된다.

겁 없는 청년검사 스피처는 6년에 걸친 수사 끝에 92년 뉴욕 이탈리아 마피아 갬비노파를 일망타진했다. 갬비노파는 매춘과 트럭운송망 독점, 그리고 섬유업계 갈취 등을 일삼으며 뉴욕 이탈리아 마피아 5대 패밀리 중 가장 큰 조직으로 악명을 떨쳤었다. 그 덕에 스피처는 일약 스타 검사로 떠올라 매스컴과 민주당, 유대사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스피처는 98년 뉴욕주 검찰총장에 당선된 데 이어 2002년 재선된다.

유대인 부통령 첫 후보는 조셉 리버먼
정치적 야심이 많았던 뉴욕 검찰총장 스피처는 한 가지 획기적인 일을 벌였다. 많은 동료 유대인들의 아성이며 아무도 손대지 못했던 월스트리트 금융가의 관행적 비리를 파헤친 것이다. 특정 종목의 투자분석 자료를 조작한 다음 이 정보를 흘려 주식시장을 농간하는 월가의 스타급 유대인 애널리스트들을 축출했다. 유대인 중심인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부당한 관행도 수사했다. 샌퍼드 와일 씨티그룹 회장, 보험업계의 거물 모리스 그린버그 AIG 회장도 스피처가 휘두른 칼날에 크게 다쳤다. 둘 다 유대인이었다.

‘월가의 저승사자’ 스피처는 그간의 청렴한 이미지로 2006년 뉴욕 주지사에 당선됐다. 그런데 그는 또다시 과욕을 부린다. 세계유대총회(WJC) 내부의 회계비리를 문제 삼는다. WJC는 비중이 큰 국제 유대단체 중 하나다. 주류(酒類) 업체 시그램 그룹의 소유주인 에드거 브롬프만이 회장을 맡아온 기구다. 브론프만은 세계 유대사회에서 영향력이 매우 큰 인물이다. 이제 미국 유대사회는 스피처를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를 장래 유대인을 대표하는 미국 지도자로 키워보겠다는 공동체의 묵시적 합의도 포기했다.

2008년 3월 10일 미국 최대 일간지이며 유대계 매체인 뉴욕 타임스(NYT)는 눈에 띄는 특종 보도를 했다. NYT는 스피처가 고급 매춘조직 ‘엠퍼러스 클럽 VIP’의 단골고객으로 수년간 약 8만 달러를 지불하고 수 명의 콜걸과 상습적인 성매매를 했다고 밝혔다. 스피처를 상대한 콜걸 2명의 사진과 증언도 곁들였다. 연방검찰의 뚜렷한 물증 제시 앞에 스피처는 모든 혐의를 시인해야 했다. 그는 3월 17일 주지사직을 사퇴했다. 그런데 스피처는 뉴욕주 검찰총장 재직 시 뉴욕 맨해튼과 스테이튼 아일랜드의 고급 매춘조직을 수사해 관련자 20여 명을 체포한 적이 있었다. 낮과 밤이 다른 스피처의 위선적 행위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그러나 그를 동정하는 소수 여론도 없지 않았다. 과거 월가에 대한 비리 수사가 있을 때마다 말단 직원만 문제 삼았던 관례를 깨고 스피처는 거물급 인사의 부패상도 과감하게 들춰내 월가의 근본적인 개혁을 시도한 인물이란 평가 덕택이었다. 스피처는 주지사직 사임 후 한동안 사회사업에 전념했다. 2010년 6월에는 CNN의 시사프로 ‘인 디 아레나’(In the Arena)의 진행자로 재기했다가 지난 2월 이 프로그램을 떠났다.

스피처의 몰락은 얼마 전 발생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이며 프랑스 사회당 정치인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의 행적과도 여러 면에서 유사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한 유대인이며 국제 유대사회의 기대와 성원을 받은 엘리트였다. 그러나 유독 정치적 야심이 컸던 이들은 자신을 성원해준 동료 유대인의 사활적 이해를 건드리는 모험을 했다. 유대인의 오랜 기득권의 상징인 월가와 IMF의 급진적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자 우연하게도 두 사람 모두 섹스 스캔들 때문에 승승장구했던 정치역정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1차적으론 분명 그들의 사려 깊지 못한 처신에서 비롯된 결과다. 그러나 미국·유럽의 유력 정치인들의 사생활 일탈이 오로지 두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선지 이들의 추락과 관련한 몇 가지 음모설이 인터넷 공간을 떠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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