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애플, 복도 하나 사이에 두고 자존심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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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잠실 롯데마트 ‘디지털 파크’에 있는 삼성전자 매장에서 고객들이 태블릿PC ‘갤럭시탭 10.1’을 사용해 보고 있다. 건너편에 애플 ‘아이패드2’ 포스터가 걸린 애플 매장이 보인다. 애플과 삼성전자가 나란히 매장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태성 기자]


4개월 전인 올 5월 초 롯데마트 잠실점의 디지털파크팀은 ‘애플이 디지털파크에 입점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에 환호성을 질렀다. 당시 롯데마트는 애플 매장을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공을 들이던 참이었다.

 애플 입점 소식에 롯데마트는 연초에 작성했던 매장 구성도 확 바꿨다. 애플은 명품 브랜드처럼 도도하고 까다로웠다. ▶도로 쪽으로 유리문을 낼 것 ▶230~265㎡(70~80평) 상당의 애플 단독 매장을 구성할 것 ▶인테리어 구성은 전적으로 애플에 맡길 것 등을 요구해왔다.

중앙경제 8월 24일자 E2~3면.

 롯데마트 관계자는 “애플은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의 루이뷔통”이라며 “애플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국내 백화점들이 루이뷔통에 온갖 혜택을 주면서 입점시키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본지 8월 24일자 e2, 3면>

 하지만 애플 입점 소식은 삼성전자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곧바로 롯데마트 측에 애플 매장과 동일한 수준의 매장 구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애플 매장과 동일한 면적이 돼야 하며, 인테리어도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

 삼성전자의 고위 임원들까지 잇따라 롯데마트를 방문해 매장 구성을 면밀히 살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삼성과 애플의 신경전은 ‘전쟁’ 수준이었다”며 “삼성과 애플에 넓은 면적을 할당하느라 다른 브랜드 매장의 규모를 축소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수개월간의 신경전 끝에 이달 1일 롯데마트 잠실점 1층에 동시에 문을 연 잠실 디지털파크의 애플과 삼성의 매장은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애플 매장은 275㎡(창고·사무실 면적 포함), 삼성전자 매장은 245㎡로 큰 차이가 없다. 전시된 형태도 비슷했다. 애플 매장은 아이패드2와 아이폰4 같은 모바일 상품과 맥북에어·맥북프로·아이맥 등 애플의 PC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삼성 매장은 갤럭시탭10.1과 갤럭시S2를 비롯, 삼성전자 PC와 카메라 수십 대를 전시했다.

 특히 아이패드2, 아이폰4, 갤럭시탭10.1, 갤럭시S2 등 양사의 주력 모바일 제품은 정확히 한 줄에 배치돼 있었다. 애플의 아이패드2를 사용하다가 고개를 들면 복도 건너 삼성의 갤럭시탭10.1이 보이는 구조였다. 양쪽 모두 캐주얼한 티셔츠를 입은 상담 직원 10여 명이 고객들의 질문에 친절하게 응대했다.

 애플 매장은 흰색과 회색을 주요 색상으로 삼았고, 삼성전자는 흰색과 나무색 중심이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 제품들의 고급성과 다양성을 강조했다”며 “롯데마트 매장은 다른 삼성 매장들에 비해 고급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번 애플 매장은 이 회사의 ‘디자인 킷 2.0’ 버전을 적용한 2011년형 매장. 애플 매장 관계자는 “디자인 킷 1.0’ 버전은 나무색이 중심이었고, 2.0 버전은 흰색과 회색이 중심”이라고 설명했다.

 디자인 킷이란 애플이 전 세계 매장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디자인의 룰이다. 가령 ‘맥북에어 13인치 제품과 11인치 제품을 나란히 놓는다. 맥북에어 제품들이 놓인 데스크 양쪽엔 각각 37cm의 공간을 둬라’는 식으로 세세한 기기 배치까지 지정한다.

 이날 두 매장에는 60대 노인부터 유모차를 끌고 온 주부, 중·고등학생까지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곳에서 만난 조승현(40·서울 잠실동)씨는 “아이폰을 쓰고 있는데 아이패드를 사볼까 해서 왔다”며 “삼성 매장이 앞에 있어 갤럭시탭도 써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측은 “애플과 삼성의 자존심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더 나은 서비스와 인테리어를 제공하려는 양사의 경쟁이 불을 뿜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박혜민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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