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금요일 새벽 4시] “욕보셨습니다, 박원규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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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면

◆한·일 민간외교 사절인 선곡유화 대표는 ‘긍정의 힘’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습니다. 영상 30도를 웃도는 폭염에 기모노를 입고 사진촬영과 인터뷰를 하면서도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맏며느리로서 1년에 제사를 일곱 번이나 치르면서도 행복하다고 합니다. 심지어 3월에는 아들 졸업식에 참석하러 일본 센다이에 갔다가 대지진을 겪고도 덤덤합니다. 전기가 완전히 나가버린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빛이 너무 아름다워 별님에게 기도를 올렸다고 했습니다. 비결은 ‘무슨 일이든 큰 것에서 작은 것 순서로 보라’였습니다. 한국에 와 좋은 인연들을 맺은 것을 본 다음 제사를 보면 불평할 게 없으며, 인간의 탐욕으로 자연이 훼손되고 지진이 난 것이니 원전 사태도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녀의 눈에는 좋은 것만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사진기자 박종근 차장이 땀을 뻘뻘 흘리며 셔터를 누르는 동안에도 “기자님, 인상이 너무 부드러우셔서 자꾸 웃고 싶어져요. 정말 고우셔요!”라며 끊임없이 강장제 멘트를 날려줍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제 수첩엔 영어로 ‘volunteer’라고 써 줬습니다. “소아씨, 모든 일은 내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희생이라고 생각하면 억울하지만 봉사한다고 생각하면 아주 간단하고 행복해져요.” 저를 포함해 스트레스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현대인이 가슴속에 담아 두고두고 꺼내봐야 할 단어입니다. <이소아>

◆빛을 반사하는 물체의 형태와 색을 고착시킨 것이 사진입니다. 하지만 사진의 그리스어 어원은 ‘빛으로 그린 그림’을 뜻합니다. 4면에 실린 서예가 박원규 선생의 사진은 어원을 그대로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소형 LED 플래시에서 나오는 빛으로 허공에 쓰는 글씨를 찍은 것이지요. 밤 하늘의 별이나 달리는 자동차 불빛을 궤적에 따라 찍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하지만 정해진 궤도가 있는 별이나 정해진 길을 달리는 자동차와, 깜깜한 암실에서 허공에 대고 손으로 글씨를 쓰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먹을 받아들이는 종이도 없고, 꺾고 움직이며 방향·속도와 압력을 조절해 천변만화의 기운을 담아낼 수 있는 붓을 대신하는 플래시는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한석봉이 환생해 와도 쉽지 않을 겁니다. 해결책은 단 하나, 반복숙달임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수없이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차츰 제대로 모습을 갖춘 글씨가 되어 가거든요. “넉넉잡아 30분이면 됩니다.” 큰소리친 점 이 자리를 빌려 사과 드립니다. 이날 박원규 선생은 꼬박 1시간30분 동안 68번 같은 글씨를 쓰셔야 했습니다. 이 사진은 제가 찍은 게 아니라 박 선생님이 ‘빛으로 쓴’ 사진입니다. <박종근>

j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람신문 ‘제이’ 63호

에디터 : 이훈범 취재 : 성시윤 · 김선하 · 이소아 기자

사진 : 박종근 차장 편집·디자인 : 이세영 · 김호준 기자 ,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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