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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아트 록' 한의수 2집〈무(無)〉

중앙일보

입력

"한…의…수…? 뭐야? 내 이름보다 발음하기가 더 어렵군!" 지난해 가을 어느날, 내 앞으로 도착한 한 장의 음악 CD와 CD-R(데모 음악을 담기 위한 기록용 CD)에는 '한의수'라는 낯선 이름이 쓰여있었다. CD 커버는 독일 Sky 레이블이나 현대 음악 전문 레이블의 것처럼 획일적이고 단순한 느낌을 주었다. 앨범 커버 때문이었을까? 아무 생각 없이 첫 번째 작품 'A-Men'을 접하고 난 후의 느낌은 "그는 소외된 음악을 만들고, 나는 그런 음악을 듣고 있다"라는 일종의 동료 의식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준비하고 있다는 새로운 앨범에 대하여 서서히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CD-R 커버에는 "한의수 2집(Demo) 1. 無(2집 타이틀) Vocal-방준석, Rap-장세준·임준세, Soprano-이남희(후에 김남희로 정정), 합창-박창일외 4명"이라고 낙서처럼 적혀 있었다. 악필인 내가 봐도 정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의 글씨는 엉망이었다.

그러나 CD-R에 담겨있는 곡을 들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의 'The Phantom Of The Opera'를 듣는 듯한 박진감, 그리고 우리들의 동료 의식을 배반하는 듯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랩과의 융합을 시도!... 또한, 기승전결도 뚜렷했다. 이 곡이 바로 타이틀 곡 '無'에서 후에 '달의 광시곡'으로 최종 제목이 정해진 곡이었다. 처음에는 그 속에 들어있는 랩이 좀 거슬렸지만, 이 것은 단지 랩을 무척 싫어하는 나의 편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그 랩의 매력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곧바로 나는 그를 만나기로 했다. 나머지 곡들이 듣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와의 첫 만남은 나머지 곡들과의 첫 만남이기도 했다. 그에 대한 첫 인상은 수줍은 듯한 얼굴에 겸손함과 고집스러움이 교차하고 있었고, 나를 찾아왔던 뮤지션들이 늘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뮤지션이라기 보다는 평범한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데모 CD-R을 우리 회사에 보내게 되었는가?"라는 첫 질문에,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우리 회사를 추천해 주었다고 했다. 기존 음반사가 긴 곡을 꺼려하기 때문에, 짧은 곡 한 곡만을 데모로 보냈다는 그에게 나는 "우리 회사는 긴 곡을 선호하는데…"란 말로 일축 시켰다. 그의 곡 중에는 무려 18분이 넘는 곡이 있었는데, 나는 그 곡이 무척 듣고 싶었다. 양쪽 귀를 쫑긋 세우고 한 곡 한 곡 들으면서 우리는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곡은 8살의 수현이라는 예쁜 소녀가 부르는 '애국가'였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가장 많이 들어왔던 음악, 노래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한의수는 주저함 없이 '애국가'라고 말한다. 지금은 시대가 변하여 애국가의 위력(?)이 다소 줄어든 듯 싶지만, 군사정권 시절에는 모든 방송도 애국가로 시작하여 애국가로 끝났던 것은 물론, 심지어 극장에서도 영화가 시작되기 전 갑자기 울려 퍼지는 애국가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야만 했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도 "국기 강하식이 있겠습니다!"라는 커다란 확성기 소리에 멈추어 서서, 애국가를 들으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해야만 했다.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던 1980년대 초, FM 방송의 마지막을 진행했던 필자도 매일 애국가를 마지막 곡으로 걸어야 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이 앨범에 애국가가 도입된 것은 바로 하루 일과의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 즉, 하루 일과가 애국가로 시작하여, 때로는 평화롭게 때로는 전쟁을 치루는 듯 일상을 보내고 결국 애국가로써 하루를 마감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우리들의 애국가는 여러 형태로 숨어있다. 그 첫 번째의 형태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앙증맞은 꼬마의 목소리로 등장한다. 하지만 애국가를 부르는 소녀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가사에 치중하다 보니 다소 경직된 느낌이 들었다. 결국 스캣으로 처리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각종 풀벌레 소리와 함께 아침이 열린다. 때로는 그 속에서 천둥 소리와 함께 비가 내리기도 한다. 두 번째 곡 'Animism'은 마치 Sweet People과 뉴에이지 풍의 곡들처럼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무엇인가 일어날 것만 같은 폭풍전야의 고요함과 같은 평화로움이다. 그리고 곧 일상에서의 전쟁이 시작된다. 앨범 타이틀 곡이라 할 수 있는 세 번째 곡 '달의 광시곡'이 바로 일상 속에서의 전쟁을 상징한다. 그 전쟁의 결과는 한 마디로 '무(無)'이다. 한의수는 이 곡에서 대규모 편성의 오케스트레이션과 강한 소리들 즉, 금관악기와 일렉트릭 기타 등이 뿜어내는 금속성의 소리를 총동원,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은 욕구를 표현하고자 했다.

네 번째 곡 '無 1'에서는 늘어진 형태의 애국가가 등장한다. 이 곡은 18분 30초에 달하는 '無 2'로 연장, 확장되면서 긴장감과 함께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가장 한의수 다운 'Chamber Rock 작품'이다. 그는 국내 뮤지션들은 물론, 국외 뮤지션들도 연주하기를 꺼려하는 Chamber Rock을 시도하고 있다. 그의 Chamber는 실제 악기가 아닌 컴퓨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다소 차가운 느낌은 들지만 결코 어설프지 않다. 우리의 심리적 갈등을 비트 하나하나에 담고 있으며, 그러한 비트들이 모여 힘이 넘치고 화려한 음악 내적 요소를 형성하고 있다.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도달하게 되는 대단원, 마지막 곡 '시간'은 지난 가을 한의수가 썼던 짤막한 글로 설명이 충분할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무엇인가 할 일들을 찾는 사람들.…전쟁 준비를 하는 것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끊임없는 반복의 연속…내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고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시간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간 초월인 것이다. 시간초월…1999년 10월 26일 아침. 한의수"

사실, 이 앨범의 발매에 앞서 가장 커다란 문제로 대두되었던 문제점들은 '곡과 곡의 연결 부분', '곡의 배열', '여성 보컬', 그리고 'Coda 부분'이었다. 대부분의 문제점들은 그와의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었지만 'Coda' 부분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으로 애국가를 연주하여 마무리하자"라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결국, 대곡 '無 2'의 후반부에 살며시 등장하는 것으로 처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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