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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률 아랍권 최저 … 트리폴리병원 여의사가 3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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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금 리비아는 들떠 있다. 시민들은 무장 봉기 승리의 기쁨에 휩싸여 있다. 31일 시작된 ‘이드 알피트르’(금식월인 라마단의 종료를 축하하는 사흘간의 이슬람 명절)가 겹쳐 온통 축제 분위기다. 시민군은 신이 나 허공을 향해 총을 쏘고, 수도 트리폴리 곳곳에선 폭죽이 터지고 있다.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이드 사이드(즐거운 명절)”를 외친다.

시민군이 카다피군을 몰아낸 뒤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한 트리폴리 여성들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 보이며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리비아는 아랍권에서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상대적으로 약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인구 비율이 높은 나라다. 앞으로 국가 재건 과정에서 리비아 여성의 역할이 클 것으로 기대된다. [트리폴리=이상언 특파원]

 리비아인들은 흥에 겨운 모습이지만 국제사회는 이제 이 나라가 어디로 갈지를 불안한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와 추종 세력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 시민 세력이 어떤 나라를 만들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아랍권 전문가들은 이 나라의 분열을 걱정한다. 140여 개 부족의 얽힌 이해관계 때문에 통합적 리더십이 발휘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진단이다. 카다피군에 대한 공습을 주도한 프랑스·영국 등이 자원을 전리품으로 챙길 것도 염려한다.

 험난한 길이 리비아인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3월 내전 발발 초기와 최근의 트리폴리 함락을 현장에서 눈으로 보면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리비아의 진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이 나라는 속을 들여다 볼수록 장점이 많이 드러났으며 미래는 희망적이었다. 알면 알수록 ‘새 지도자만 잘 뽑으면 아랍권 부국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됐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리비아의 참모습을 정리해봤다. 대부분 미래를 낙관하게 해주는 근거들이다.

 우선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다. 이집트·튀니지·알제리 등 이웃의 북아프리카 국가들과 달리 거리에 질서가 잡혀 있다. 교육도 아프리카·아랍권 최고 수준이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문자 해독률이 남성은 92.4%, 여성은 72%로 중동 최고 수준이다. 카다피 정권은 공교육을 확충하고 여성들에게도 공평한 교육 기회를 줬다. 시민군들은 철저히 일반 시민들을 보호했다. 시민군 중 다수는 의사·교사·공무원 등 전문직 종사자다.

 둘째는 국민들이 높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거나 뒷돈을 요구하는 경우는 이번 취재 기간 중 본 적이 없다. 이웃 아프리카·중동 국가에서는 자주 겪던 일이다. 빠른 일처리를 위해 뒷돈을 주겠다고 제의했다가 “여기는 이집트가 아니다”는 말과 함께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대체적으로 순박했다. 오랜 폐쇄 정책 덕분에 이슬람 사회의 공동체적 전통이 잘 보존된 측면도 있어 보였다. 물론 시민군들은 동의에 주저했지만 말이다.

 셋째는 이슬람권에 널리 퍼져 있는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것이다. 여성 경제활동 인구 비율이 25%를 넘는다. 트리폴리 시립 병원의 의사 중 30%가 여성이라고 한다. 30대 중반 이하의 여성들은 전통 의상인 히잡(전통 스카프)만 머리에 착용한다. 의사 파티마 엘그라리(29)는 “이탈리아 등 서방 국가 식민지 시절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여성에 대한 억압이 적었고, 카다피도 여성들의 직업 활동을 장려했다”고 말했다.

 넷째는 원유다. 리비아 미래의 핵심이다. 이 나라는 내전 전까지 하루 179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했다. 세계 18위 수준이었다. 미국 등의 경제적 제재를 당하기 전인 1970년대에는 하루 300만 배럴 이상을 생산하기도 했다. 원유 매장량은 세계 9위다. 내전으로 원유 저장 시설들이 상당수 파괴됐지만 임시정부는 빠른 속도의 복구를 장담하고 있다. ‘오일머니’는 내전의 후유증을 빠르게 치유하는 데에도 유효하다. 임시정부는 원유 수출로 축적한 해외 자산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해외 자산 전체 규모는 확인된 것만 160조원이 넘는다.

 마지막으로 ‘청년들의 순수한 열망’을 덧붙일 수 있다. 시민군 캠프에서, 시가전 현장에서, 거리의 검문소에서 만난 리비아 시민군 청년들은 민주화, 경제 개발, 국가 통합에 대한 강하고 깊은 의지를 보여줬다. 대학생 자원병 마흐무드 압둘하미드(21)는 “부족 간의 다툼이나 지역 감정의 골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혁명으로 많은 부분이 희석됐다. 섞여서 함께 싸우며 서로가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트리폴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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