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저평가된 종목에 50% 투자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7면

이 사람만큼 자신의 인생을 즐기고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자신이 맡은 펀드를 수익률 1위에 올려놓은 펀드매니저이자 노래깨나 안다는 이들로부터 실력 있는 싱어송라이터로 인정받는 사람. 두 달 전 동부자산운용 투자전략본부장 자리를 떠나 새 길을 찾아 나선 김광진(47)씨 얘기다.

냉정한 투자와 감성적 노래. 안 어울릴 것 같은 둘을 모두 움켜쥐고 제대로 인생을 즐기는 김광진(47)씨. 그는 “주식시장의 과실을 많은 사람이 나눠 갖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그는 운용사 임원이라는 평탄한 길을 마다하고 울퉁불퉁한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직접 투자자문사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운전할 때 모르는 길을 처음 가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 길을 다시 가면 빠르게 가잖아요.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익숙한 일만 하면 인생은 너무 빨리 흘러버리죠.”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그를 만났다. 정신 없이 변하는 증시 그래프를 보여주는 모니터와 피아노 건반, 그리고 기타가 함께 뒹구는, 바로 그의 인생을 꼭 닮은 작업 공간이었다. 벽 한편에는 퇴사 전 동고동락하던 팀원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는 그 사진을 가리키며 “요새 저 친구들이 ‘힘들어 죽겠다’고 한다. 주식시장이 엉망이니까 스트레스도 무지 받을 거다”라고 말했다.

 -최근 시장 상황을 어떻게 보나.

 “지금은 하락 위험보다 상승 위험이 더 크다. 가령, 코스피지수가 1500이 되면 사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은 주가가 1700, 1800으로 계속 올라도 ‘기술적 반등이니까 더 기다리겠다’고 하다가 못 사게 된다. 그러다 더 높아지면 뒤따라가는데 이러면 투자 기회를 놓치게 된다. 지금은 저평가된 종목을 찾아 (금융자산의) 50% 정도를 주식으로 담아야 한다.”

 -얼마 전 트위터에 ‘국내 아이돌 경쟁력은 세계 최강’이라고 적었는데.

 “아이돌이 군무(群舞) 추는 걸 보면 세계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이돌 그룹도 콘텐트 보호를 제대로 안 해주면 경쟁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자산운용사도 마찬가지다. 투자 노하우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운용 수수료를 낮추는 데만 급급하면 운용사가 발전할 수 없다.”

 -국내 자산운용업계에 문제가 있다는 건가.

 “각 회사가 다양한 투자철학을 갖고 경쟁하기보다 단기 수익률에 집착한다. 그러다 보니 자금이 한쪽으로 쏠려 시장의 변동성이 커진다. 수수료는 점점 낮아지고 자문사는 성과보수도 없애려고 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투자, 인재 육성이 가능하겠는가.”

 -자문사를 만들면 하고 싶은 일이 있나.

 “1986년에 미국에서 MBA 과정을 밟을 때만 해도 강의시간에 우리나라 기업을 다루는 경우가 없었다. 지금은 어떤가. 당시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기업이 성장하면 그 과실은 주식시장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혜택이 주로 자산이 많은 사람에게만 돌아간다. 일종의 양극화다. 장기적으로 많은 사람이 증시에 참여해 경제발전의 과실을 나누도록 노력하고 싶다.”

 그에겐 중학교 2학년생인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생인 딸이 있다. 아버지가 다니던 직장을 박차고 나간다고 하자 두 자녀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한다. 딸은 “아빠가 그만두면 밥은 할아버지 집에 가서 먹으면 되는데 나중에 내 대학 등록금은 누가 내느냐”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면서 “엄마는 왜 말리지도 않았느냐”며 부인 허승경(41)씨에게 투덜거리기도 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담담했다. 그는 “내가 혈액형 B형에 처녀자리(9월생)라 그런지 낙관적 성격과 비관적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래서 우울한 감정은 음악으로 털어버리고 투자를 결정할 때는 긍정적으로 보려 한다”고 말했다.

 요즘 잘나가는 TV 프로그램인 MBC ‘나는 가수다’ 출연진이 그의 노래를 다시 부르면서 그의 음악성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최근엔 유명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작곡 중이다. 연말에는 더 클래식의 새 앨범도 발표할 계획이다. “투자와 음악은 내 소명”이라는 그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계속 뛰고 있다.

허진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김광진=금융인이자 가수 겸 작곡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미시간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장은투자자문을 시작으로 증권가에 입문, 하나경제연구소·삼성증권·동부자산운용 등에서 일했다. 그가 운용을 맡은 ‘동부더클래식진주찾기주식’ 펀드는 수익률 48.92%를 기록해 2007년 상반기 수익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1994년 박용준과 함께 그룹 ‘더 클래식’을 결성해 ‘마법의 성’ ‘편지’‘여우야’ 등의 노래를 히트시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