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투표 끝나면 꼭 챙겨주겠다” 곽노현, 박명기 회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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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30일 입을 굳게 다문 채 출근하고 있다(사진 왼쪽). [안성식 기자] 박명기 교수가 29일 구속영장 발부 후 서울중앙지검에서 구치소로 가고 있다. [김태성 기자]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측이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7억원의 지급을 계속 미루면서 공소시효와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핑계로 들었다는 박 교수 측 관계자들의 진술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곽 교육감 측이 공직선거법상의 공소시효 조항을 잘못 이해하는 바람에 자기 꾀에 넘어간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 교수의 측근인 A씨는 30일 “곽 교육감 측이 ‘후보 사퇴 대가로 약속했던 7억원을 달라’고 독촉하자 ‘공직선거법의 공소시효가 아직 남아 있는데 어떻게 줄 수 있느냐. 시효가 끝난 뒤에 주겠다’며 지급을 미뤘다”고 주장했다. 실제 곽 교육감은 교육감 선거가 치러졌던 지난해 6월 이후 8개월이 지난 올해 2월에야 박 교수에게 처음 돈을 지급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을 조기에 치유하고 선출직 공무원들의 안정적인 직무 수행을 보장하기 위해 공소시효가 6개월로 매우 짧다. 실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경우 지난해 12월 2일 기소됐는데 이날이 바로 교육감 선거의 공식적인 공소시효 만료일이었다. 이렇게 보면 올해 2월은 통상의 경우 선거법의 공소시효가 이미 지난 시점이다.

 문제는 선거법상 몇 가지 예외조항이 있다는 점이다. 우선 범인이나 중요 참고인이 도주한 경우에는 공소시효가 3년으로 늘어난다. 또 선거일 이후에 이뤄진 범죄의 경우 공소시효는 그 범죄가 이뤄진 날로부터 6개월이 된다.

이번 사건의 경우 선거일 이후인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범죄가 이뤄져 공소시효가 지난 2월부터 새롭게 시작되기 때문에 대부분 범죄의 공소시효가 아직 남아 있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각각의 금품전달 행위 전체가 하나의 혐의로 간주되는 포괄일죄(包括一罪)이기 때문에 모든 행위의 공소시효가 아직 지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A씨 주장이 사실이라면 법률전문가를 자처했던 곽 교육감 측이 공소시효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해 발목을 잡힌 꼴이 된 셈이다.

 검찰 등에 따르면 곽 교육감 측은 또 지난 24일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도 자금 전달을 미루기 위한 도구로 삼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곽 교육감 측이 “주민투표가 끝나면 꼭 챙겨줄 테니 조금만 참아 달라”고 박 교수 측에 요청했다는 것이다. 곽 교육감 측이 이 과정에서 검찰 내사 사실을 인지하고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주민투표를 핑계로 박 교수를 회유하려 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곽 교육감이 이미 8월 초에 출국금지가 됐고, 최근까지 광범위한 계좌추적의 대상이 됐다는 점을 들면서 그가 늦어도 8월 중순에는 검찰 내사 사실을 감지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사건의 근원인 박 교수를 회유하기 위해 “주민투표만 끝나면 돈을 주겠다”고 그를 달랬다는 얘기다. 하지만 검찰이 주민투표 종료 후 이틀 만에 발 빠르게 행동을 취하면서 남은 5억원의 전달 시점과 방법 등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검찰은 이 같은 관계자들의 진술로 미뤄볼 때 “아무 대가 없이 ‘선의’로 2억원을 줬다”는 곽 교육감 측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판단을 내린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청구한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법원이 대부분 발부해 주고 있다는 것은 검찰이 확보한 물적·인적 증거와 참고인 진술 등이 충실하다는 의미”라며 “곽 교육감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박진석 기자
사진=안성식·김태성 기자

◆금융정보분석원(Financial Intelligence Unit·FIU)=2001년 설립된 금융위원회 산하 기구로 은행 등 금융회사를 이용한 범죄자금의 세탁과 외화 불법유출을 방지하는 일을 한다. 금융회사로부터 의심스러운 거래 내용을 통보받아 분석한 뒤 혐의가 있을 경우 검찰 등 수사기관에 통보한다.

◆공소시효(公訴時效)=범죄가 발생하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제도. 법적 안정성 유지와 공권력 낭비의 방지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지만 시효가 지나면 살인 등 흉악범에 대한 처벌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제도 자체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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