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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한·중 합작영화 〈아나키스트〉

중앙일보

입력

"삶은 산처럼 무거우나 죽음은 깃털처럼 가볍다."

조국이 일본제국주의의 침탈로 신음하고 있던 1920년대,격랑의 역사에 휩쓸린 조선인 무정부주의자들의 삶이 꼭 그랬다.

신인 유영식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아나키스트〉(씨네월드 제작)는 항일 테러활동의 본산인 의열단(의열단)에 가담한 5명의 조선인 무정부주의자들의 불꽃같은 짧은 삶을 그려낸 액션 느와르.

거칠고 차가운 액션에 농염하면서도 따뜻한 로맨스와 엔터테인먼트가 곁들여져 비장감이 넘치는 '남성적' 영화다.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가 숨가쁘게 소용돌이쳤던 질풍노도의 공간이자 혁명가와 창녀가 한데 모여든 자유와 모험과 환락의 땅 상하이가 배경이다.

모스크바 대학 출신의 아나키스트 세르게이(장동건), 시인이자 톨스토이를 숭배하는 휴머니스트 이 근(정준호), 냉철한 사상가 한명곤(김상중), 과격한 행동주의자 돌석(이범수), 막내 테러리스트 상구(김인권).

이들 열혈청년 테러리스트는 '일제'와 맞서 싸우다 '망명자의 품'과도 같은 그 격동적인 땅에 이데올로기와 사랑, 이별, 운명 그리고 한을 고스란히 묻어두고 산화 해 갔다.

그것도 왜경에 의해 '불량선인'으로 낙인찍힌 채. 출신배경부터가 제각각이지만 이들은 폭력과 테러만이 가장 효과적인 독립투쟁 노선이라는 신념을 지녔다.

일본인 아버지와 조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모와 가창력을 겸비한 '가르시아 홀' 클럽의 여왕, 가네꼬(예지원)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또다른 아나키스트로 그려져 있다.

제작사인 씨네월드측이 밝힌 기획의도가 재미있다. "1924년 무정부주의자들의 이유없는 테러행위는 인정받을 수 없었던 정신이었지만 지금 거리를 활보하는 무정부주의적 젊은이들의 거침없는 몸짓과 닮아있다"...

유 감독은 "새로운 세기를 맞은 세대들에게 1920년대 조국 땅을 유린한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격랑의 세월을 헤쳐간 젊은이들의 비장한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내영화사상 최초의 한·중 합작영화란 점에서 이목을 끈다. 그것도 100% 중국현지에서 촬영됐다. 50여명의 제작진이 3개월에 걸쳐 현지에서 숙식을 함께 하며 제작했다.

합작사인 상하이 필름 스튜디오측은 의상, 미술, 소품, 조·단역 배우 및 엑스트라, 세트, 장소 로케이션 등을 일괄적으로 맡았다.

세계적인 거장 장이모와 첸 카이거의 영화는 물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태양의 제국〉등 할리우드 영화와 〈레드 바이올린〉등 유럽합작 영화들도 이 곳에서 제작됐다.

베이징, 창춘과 함께 중국의 3대 스튜디오로 꼽히는 이 상하이 필름 스튜디오의 처둔(차돈) 오픈세트는 20년대 당시의 상하이 거리 풍경을 잘 살려냈다.

홍콩스타 리밍(여명)이 주제가를 불렀다. 21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29일 개봉.(서울=연합뉴스) 이명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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