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한인 '국제결혼 사기' 물의

미주중앙

입력

김씨가 미군에 근무한다며 피해 여성들에게 제시한 신분증은 모두 가짜였다.


최근까지 버지니아(요크타운)에 거주했던 한인 김 모씨(40대 후반 ~ 50대 초반 추정)가 한국의 여성들을 상대로 혼인빙자 국제 결혼 사기극을 벌여온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피해자들의 증언 등에 따르면 올들어서만 김씨에 의해 사기를 당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 여성은 확인된 이들만 3명이다.

피해자들은 “지난해 말에도 한 여성이 비슷한 과정으로 돈을 빼았겼다”고 증언하고 있고 김씨의 전화, 이메일, 컴퓨터 사용 기록 등에 다른 여성들과 접촉한 흔적이 있어 피해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씨는 한 피해자로부터 사기 행각이 발각되면서 현재 도주했으며, 사용하던 전화번호는 더 이상 연결되지 않았다.

김씨는 주로 한국의 싱글 카페(포털 다음은 '이혼남녀') 등 남녀 소개 전문 사이트에 가입해 “미군에 23년 근무했다. 지금은 미 CID (김씨는 이것을 미육군 수사국이라고 했다) 에 근무한다. 배우자를 찾는다”는 글을 올려 미국에 오고 싶어하는 여성들과 접촉을 시작, 결국에는 직접 만나 금전적, 혹은 육체적으로 농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아이들을 홀로 키우던 싱글맘들이었다.

한국의 한 지방에서 버젓한 직장에 다니던 싱글맘 A씨(40대)는 올해 김씨의 농간에 속아 직장까지 그만두기까지 했다. 확인을 위해 수개월전 버지니아를 처음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이 때 김씨는 그녀에게 버지니아 뉴포트 근처 군부대 등을 보여주며 자기가 근무하는 곳이라고 했고 영어로 된 신분증 3개도 보여주었다. A씨는 김씨를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김씨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A씨는 영구 출국을 위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 사이 김씨는 A씨 아이들의 학교 등록과 비자 발급, 주택 공동 구입 등의 명목으로 돈을 미리 보내라고 해 A씨는 세 차례에 걸쳐 총 6500만원을 송금했다.

이후 회사를 그만둔 A씨는 7월에 다시 김씨를 만나러 버지니아로 날아왔다. 김씨가 구입했다고 사진으로 보여준 주택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20년을 넘게 미군에 근무했다는 김씨의 영어 실력은 형편 없었다. 또한 주택도 구입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볼품 없었다.

A씨는 “실제 비자 신청을 했는지를 묻고 아이가 다닐 학교와 이민 변호사를 만나자고 했더니 김씨가 당황해 했다”며 “근무하는 부대에 가보자고 했더니 나를 남겨 놓고 차를 몰고 도주했다”고 증언했다. 더 이상 거짓은 통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김씨가 6만여달러를 챙겨 A씨와의 관계를 끊낸 순간이다.

A씨는 우여곡절 끝에 확보한 김씨의 신분증은 조회결과 가짜이거나 법적 효력이 전혀 없는 것들로 판명됐다.

A씨의 고통은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김씨가 A씨와 한국의 가족들에게 그동안 보여준 행각이 너무나 기가 막힌 것들이었다. 김씨는 A씨의 가족들에게 국제전화로 거의 매일 안부를 전하고 심지어는 A씨 부모에게 동영상으로 노래를 불러주고 장모에게 “사랑한다”는 ‘가증스런’ 언행을 삼가지 않았다고 한다. A씨는 “연로하신 엄마와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나 혼자만 사기를 당했다면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름과 나이는 여러개 사용

김씨는 피해대상 여성의 나이에 맞추어 나이를 고무줄 처럼 늘려 소개하는 치밀한 수법을 보였다. A씨에게는 1962년생이라고 했지만, 다른 피해 여성에게는 1955년생 또는 1960년생이라고 거짓말 한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이름도 여러가지를 사용했다. 피해자들은 김씨의 이름을 서로 달리 알고 있었으나 모두 동일 인물로 판명됐다.

소개로 접촉하게 됐다는 피해자 B씨는 A씨와 마찬가지로 미국을 방문하긴 했지만, 김씨의 사기 행각을 다행히도 미리 파악했다. B씨는 “미국에 오기 전에 김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차렸다”고 전화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나 B씨 사기를 눈치챈 것은 직장과 친척들에게 미국으로 이주한다고 알린 뒤였다. “미국을 가보니 마음이 바뀌었다”고 주위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할 수없이 미국을 방문했다. 다니던 직장을 잃고 미국을 몇 일간 오고가며 든 경비와 맘 고생을 생각하면 역시 큰 피해자이다.

또 다른 피해자 C씨는 A씨 보다도 더 많은 돈을 김씨에게 빼았긴 것으로 전해졌다. C씨도 김씨의 농간에 속아 버지니아를 방문했고, 이 때 그는 주로 “미국에서는 부부가 공동 명의로 집을 사기 때문에 집값 40만 달러의 절반인 20만 달러를 보내야 한다”며 돈을 챙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씨는 여러 여성들을 상대로 버지니아 소재 한 비자업체와 거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게 된 것도 김씨가 혼인 빙자로 불러들인 여성들의 비자를 이 업체에 부탁했고, 이 업체가 대금을 받기 위해 김씨의 전화로 연락한 것을 피해자들이 받으면서다. 이 업체는 본지의 확인노력에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공범 추정되는 정황

피해자들은 이번 사건이 단순히 김씨의 단독 범행이라고 생각지 않고 있다. 돈을 챙기기 위해 그와 함께 행동했던 30대 초반 K씨(남)의 친누나로 알려진 한국 K 여성의 KB(국민)은행 계좌가 사용됐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아이들 학교 등록, 주택 공동 구입을 위해 송금하라는 수법을 쓰며 이 계좌번호를 주었다고 밝혔다. 계좌 소유주 K씨는 피해자들의 추궁에 “입금된 돈을 미국으로 다시 송금해달라고 해서 따랐을 뿐이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추가 공범이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K씨가 미국으로 돈을 보냈다는 미국의 은행(뱅크오브아메리카) 계좌가 또 다른 J씨 명의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이 단순히 순진한 여성들을 농락한 개인 사기꾼의 행각이 아니라는 것이 피해자들의 일치된 주장이다. 피해자들이 공범이라고 주장한 K씨 남매도 18일 전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단순 사기 사건을 넘어 공무원 사칭, 불법 무기 소지 등 연방법 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높다. 피해자들은 주범 김씨가 총기를 휴대하고 있었다고 한다. 만일 이같은 혐의가 확인되면 김씨는 사기 외에 이민, 총기 관련 법 위반으로 연방 법원에서 중형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피해자 등의 여러 진술을 종합해 볼 때 김씨는 불체자일 가능성이 높다.

“돈은 이미 잊었다. 일을 하면 밥은 못 먹고 살겠나. 나와 가족들의 마음을 찢어 놓은 김씨가 꼭 죄의 댓가를 받기를 바랄 뿐이다. 추가 피해자가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고 피해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미국에서 ‘제2의 인생’을 살려고 마음 먹었던 여성들의 한국에서의 여생도 김씨가 짓밟은 셈이다.

송훈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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