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talk ⑫ 영화 ‘식객’ 감독 전윤수의 ‘육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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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2007년 영화 ‘식객’을 촬영할 때 전국을 돌아다니며 별미를 맛봤어요. 하지만 그런 별미보다 더 기억에 남는 음식은 바로 영화 촬영 후 남은 재료로 조리해 먹었던 음식이에요. 사실 영화 속에 등장한 음식은 비주얼에 더 초점을 두고 만들기 때문에 실제로 그렇게 맛있진 않아요. 오히려 그런 음식 촬영이 끝난 후 현장의 요리사와 스태프들이 남은 재료로 만드는 음식이 진정한 별미죠.

 배우 김강우씨와 함께 도축 가공장에 갔던 적이 있어요. 그때 처음으로 소가 죽는 걸 직접 보고, 피 냄새도 맡았는데 그 냄새가 너무 역겹고 힘들었어요. 충격적인 비주얼도 계속 생각났죠. 하지만 며칠 후에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요.

 김강우씨와 임원희씨가 소를 부위별로 자르는 장면을 촬영하는 중이었는데, 며칠 동안 그렇게 힘들어 했는데도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군침이 돌더라고요. 그래서 그 장면 촬영이 끝난 후 현장에서 그 고기로 스태프들이 직접 육회를 만들어 먹었어요. 일단 배에 설탕·간장·참기름·다진 마늘을 넣고 버무려서 양념을 만들었어요. 쇠고기는 엉덩이살 부위를 결 반대 방향으로 채 썰어서 그 양념을 버무렸죠. 가운데에는 달걀 노른자를 얹었어요. 현장에서 먹었던 그 맛을 잊을 수 없어요. 고소한 게 정말 맛있었죠. 맛도 맛이지만 다 같이 고기를 나눠 먹는 모습을 보니 현장을 이끄는 사람 입장에서 뿌듯했어요.

 ‘식객’이 음식을 다룬 영화이다 보니 유달리 음식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은 것 같아요. 한 번은 고랭지 배추밭에서 촬영했는데, 촬영이 끝나고 배추밭에서 배추를 직접 뽑았어요. 삼겹살을 구워 동네 어르신들께 얻은 된장을 찍어, 갓 딴 고랭지 배추에 싸 먹었죠. 그때 김강우씨가 늦게 왔었는데 “이놈의 현장은 믿을 수가 없다”며 “방심하는 순간 맛있는 게 다 사라진다”고 울분을 토해 촬영장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죠.

 대규모 요리 대결 장면을 촬영할 때는 많은 인원이 동원됐어요.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려고 비빔밥 도시락을 몇천 개 주문했거든요. 그런데 한 번에 너무 많은 음식을 준비해서인지 비빔밥이 상해서 도착했더라고요. 상한 도시락을 걱정한 도시락 집 사장님이 현장으로 달려오시다가 중간에 쓰러진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어요. 나중에 듣고 보니 그 사장님은 큰 부담감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음식영화를 찍는 현장에 상한 음식을 배달했으니 너무 큰 사건이라고 자책을 했다네요.

 음식은 늘 숨어 있던 기억을 자극하는 것 같아요. 그때 그 음식을 누구랑 같이 먹었고, 내 기분은 어땠고, 날씨가 어땠고 등등이 다 떠오르잖아요. 유행가를 들을 때처럼 기억 한쪽 구석에 묻혀 있던 추억을 자극한다고 할까요. 저에게 육회가 유쾌하고 특별했던 영화 ‘식객’ 촬영 현장을 떠올리는 추억의 음식인 것처럼 말이에요.

 정리=이상은 기자

●전윤수 감독은 … 1971년 서울 출생. 중앙대에서 영상예술학을 공부했고, 2001년 영화 ‘베사베무쵸’ 로 데뷔했다. 같은 해 황금촬영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2007년 영화 ‘식객’을 발표했다. 이 밖에 ‘파랑주의보’ ‘미인도’ 등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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