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 株價는 잊어버려라”

중앙일보

입력

美 월가의 주가가 사상 최대의 폭락을 기록했다. ‘피의 금요일’이란 말까지 나돌았다.
미국 증시의 영향권에 있는 한국 증시는 어떻게 될 것인가. 가뜩이나 총선 뒤 주가가 불안하던 때에 전해진 미국 월가의 끔찍한 소식에 투자자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백경일·스티브·골드존·보초병 등 사이버 증시에서 필명을 날리고 있는 4명의 ‘얼굴 없는 고수’들을 본사로 초청, 장세전망과 투자전략을 듣는 대담자리를 마련했다. 다만 골드존은 개인 사정으로 사진을 게재하지 않았다.<편집자>

주식시장에도 사이버 시대가 꽃을 피우면서 ‘얼굴 없는’ 분석가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지금까지 초야에 묻혀 혼자만의 수익률 게임에 열중하던 ‘재야(在野) 애널리스트’들이 인터넷을 무대로 외국인·기관투자가들과 어깨를 겨루며 나름의 목소리를 세우고 있다.

필명이 널리 알려진 고수만도 1백여명. 이들은 ‘팍스넷’(www.paxnet.co.kr), ‘씽크풀’(www.thinkpool.com), ‘코스닥터’(www.kosdoctor.co.kr) 등을 거점으로 사이트의 대표 주자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이들은 특히 개인투자자들이 막강한 자금과 정보, 고도의 투자기법으로 무장한 외국인·기관들과 맞설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대개 기댈 곳 없이 손실만 보던 ‘개미군단’에게 대가 없이 합리적 투자기법과 정보를 제공하는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언제나 족집게처럼 맞추지는 못하지만 이들은 기관투자가들과 달리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움직인다는 점에서 더욱 신뢰를 얻고 있다.

그래서 이들이 올린 글은 몇천에서 많게는 몇만의 조회 횟수를 기록한다.

이들 가운데 실력이 인정된 ‘고수’들은 개미군단 사이에서 영웅대접을 받기도 한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본명조차 밝히지 않아 필명만 알려져 있다. 얼굴을 드러내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그런 까닭에선지 이들은 투자자들에게 신비감을 더해 주며 ‘카리스마’를 형성하기도 한다.

개미군단으로부터 웬만한 스타 빰치는 대접을 받고 있는 팍스넷의 스티브·백경일, 씽크풀의 골드존, 코스닥터의 보초병에게 투자관과 전략, 유명세에 따른 고충 등을 들어봤다.

─주식시장은 어느 때보다 잔인한 4월을 보내고 있다. 4월장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미국 증시까지 폭락을 거듭, 투자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 것으로 보나.

백경일:거래소·코스닥 모두 중간중간에 단기 반등은 있을지 몰라도 당분간 어려울 듯하다. 5월까지는 하락장이 아닌가 싶다. 미국 증시가 다시 반등한다 해도 국내 증시의 뚜렷한 주도주가 없다. 사실 거래소 시장은 이미 지난 1월에 하락장으로 돌아섰다. 거래소는 7백70선이 지켜지느냐를 봐야 한다. 만약 이 선이 무너지면 6백60선도 장담하기 어렵다.공격적인 투자자가 아니라면 종합지수가 8백42선을 뚫는 것을 보고 매수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코스닥은 1백80선이 중요하다. 조정이 이어질 듯하니 쉬는 게 나을 것 같다.

골드존:미국 시장, 특히 나스닥이 폭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폭등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이른바 ‘눈덩이 효과’다. 매수가 또다른 매수를, 매도가 또다른 매도를 부르는 형국이다. 그러나 나스닥은 웬만큼 떨어졌다고 본다. 이제 단기적으로나마 반등이 나올 때가 됐다. 4월 셋째주가 고비면서 공격적인 투자자에게는 저점 매수의 기회가 될 듯하다. 나스닥이 반등의 기미를 보인다면 코스닥도 4월 말부터는 일단 오름세로 돌아설 것으로 판단된다.

보초병:거래소·코스닥 모두 발빠른 데이트레이더가 아니라면 단기 매매도 자제하고 쉬는 게 나을 듯하다. 사실 데이트레이딩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상승 전환은 고사하고 저점이 낮아진 박스권만 유지되어도 그나마 다행일 것으로 생각한다.

스티브:모멘텀이 필요하다. 예컨대 투신의 구조조정이 빨리 이뤄져야 한다. 적어도 그런 시그널이 나와야 시장이 살아날 수 있다. 4월까지는 단기 수익도 어려운 장일 듯하다. 다만 삼성전자를 비롯, 우량 대형주를 깔아 두는 전략은 괜찮을 듯하다.

─개인투자자들은 주식시장이 요즘 같은 하락기든 아니면 상승기든 큰 수익을 내지 못한다.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지.

백경일:쉴 때와 할 때를 가리지 않는 게 문제다. 예컨대 종합주가가 3백에서 1천포인트까지 갈 때도 재미를 못 본 사람들이 요즘 같은 조정장에서 뭘 먹으려고 달려드는지 모르겠다. 지금처럼 조정 또는 하락장에서는 주식을 팔고 쉬라고 말한다. 팔고 난 다음날 상한가를 칠 수도 있겠지만 대세가 하락기라면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 대신 상승 시작 때부터 마무리까지 과정을 분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골드존:하락장은 늪과 같다. 움직일수록 더 깊이 빠져들 뿐이다. 수익을 내기보단 리스크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물론 모니터를 떠나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매매규모와 주식 보유기간을 되도록 줄여야 한다. 또 대개 10% 범위에서 손절매를 하지만 30%까지도 과감히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현금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유명세를 많이 치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전과 달라진 점 및 어려움은.

보초병:무척 바빠졌다. 하루에 상담하는 시간만 5시간이 넘는다. 이메일이 폭주해 제때 답을 못해 주자 항의 메일이 잇따랐다. 그래서 얼마 전 휴대폰 번호를 공개했더니 새벽까지 울려대 잠을 못 자기도 했다.

스티브:시장을 움직이는 경우도 있어 글 올리기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열성팬 가운데는 이른바 ‘아줌마 부대’가 많다. 종목을 찍어 달라는 전화나 메일이 쏟아진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찾아와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골드존:이름이 좀더 알려진 뒤에는 매수 또는 매도 타이밍에 대한 메시지를 보내기가 조심스럽다. 지난 3월 폭락 경고가 현실로 나타나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왜 그런 글을 올렸느냐며 1주일 내내 항의에 시달렸다. 또 음해성 글도 꽤 올라와 괜한 오해를 살 때도 많아졌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유혹도 많을 것 같은데….

스티브:돈을 맡기겠다는 제의가 많다. 그러나 지금은 팍스넷의 직원이고 돈에 욕심을 내야 할 만큼 아쉽지도 않다. 또 요즘은 벤처컨설팅 등의 일로 바빠 시간도 없어 거절한다.

백경일:하이텔에 글을 올릴 때부터 강남 큰손들의 제안을 많이 받았다. 금액도 수십억원대였다. 그러나 개인적인 대화는 하지 않고 메일이 오면 답장을 해 줄 뿐이다.

골드존:개인적인 제의가 꽤 들어온다. 그런 탓에 사설 펀드를 꾸리고 있다는 음해성 루머도 나도는 것으로 안다. 지금은 사이버 트레이딩을 할 수 있는 정보카페 ‘씽크넷’의 일을 도와 주고 있는 정도다.

보초병:여의도쪽에서 같이 일하자거나 몇억원대의 자금을 굴려 달라는 제의가 많다. 그러나 굳이 조직에 들어가 매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또 컴퓨터 강사 일도 그만두면 언젠가 사설 펀드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아직 그럴 생각은 없다.

─나름대로 장의 흐름을 읽는 투자 원칙과 투자 잣대는 무엇인가.

백경일:주식투자에는 박사가 따로 없다. 다만 차트를 보면 80~90%는 답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동평균선의 움직임은 꼭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투자는 상승 전환 확인 뒤에 해야 한다.

스티브:기업의 내재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주당순이익(EPS)을 중시한다. 그런 까닭에 거래소 시장에 좀더 기울어지다 보니 굴뚝주 얘기만 한다는 핀잔도 가끔 듣는다. 주식은 패션이다. 단기적으론 유행 종목에 포커스를 맞출 필요도 있다. 경험이 부족한 투자자는 5일 이동평균선이 25일선을 뚫고 올라갈 때 사는 게 안전하다.

골드존:기술적 분석을 중시한다. 특히 심리가 강하게 반영되는 이격률차트, 심리선 차트, 삼선전환도 등을 유심히 본다. 주가를 움직이는 힘은 기업의 가치가 아니라 투자자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주가는 투자 마인드의 합이다. 자신을 통제하고 탐욕을 버리는 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뻔히 아닌 줄 알면서 들어가고 신용이나 미수까지 거는 경우가 많다. 3개월이 넘는 장기투자도 금물이다. 인터넷의 발달과 증시 동조화로 ‘장기’라는 개념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보초병:거래량을 가장 먼저 본다. 장중에는 공매도나 허매수가 있어 정확한 판단이 쉽지 않지만 들락거리는 물량을 체크해야 한다. 또 이동평균선이 정배열이냐 역배열이냐도 참고하고 외국 증시 등의 변수도 따져 본다. 또 장이 시작되면 ‘기계’로 변해야 한다. 마음이 급해지면 판단이 흐려져 우왕좌왕하게 된다. 한두 달은 모의투자를 해 보고 실전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고수 4인의 면면은…

‘골드존’이라는 필명을 쓰는 김기준씨는 인터넷 증권정보 사이트 씽크풀에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 대접받는다. 지난해 11월 말 씽크풀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강력한 매도 경고가 1월과 3월의 폭락장에서 현실로 나타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지난 92년 주식투자를 시작했고 투자금액은 3억원 정도다.
‘백경일’이라는 필명의 주인공은 박모씨. PC통신 하이텔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인물이다. 요즘은 인터넷 증권정보 사이트 팍스넷에 글을 올리고 있다. 50대 후반으로 주식투자 경력이 20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트 분석의 대가로 꼽힌다.
‘스티브’라는 필명을 쓰는 강동진씨는 공학박사 출신이다. 지난해 9월까지 원자력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다. 주식투자 경력 15년. 투자원금은 1천만원 정도다. 기업의 내재가치가 주가의 잣대가 된다고 보고 주당순이익(EPS)을 중시한다. 팍스넷의 투자전략팀장을 맡고 있다.
‘보초병’이라는 필명을 쓰는 박동운씨는 ‘코스닥터’의 대표주자. 지난 87년 대학 시절 첫 투자를 했다. 94년 삼성중공업을 나온 뒤 컴퓨터 프로그래밍 강사로 뛰고 있다. 정보수집을 위해 글을 쓰다가 팬이 늘면서 사이버 분석가로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사이버 분석가들 노조결성 움직임

사이버 증시 분석가들이 노조(?)를 만들 움직임이다. 필명 황제개미·작전주 조사팀을 비롯, 일부 사이버 분석가들을 중심으로 필진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동호회를 만들자는 얘기가 나온 것. 일단 동호회 작업은 필명 헤르미안이 전면에 나서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 4월15일 강남에서 발기인 모임을 가졌다.
이들의 이런 움직임에 사이트 운영자들은 불협화음이 일지 않을까 조금 긴장하는 모습이다. 어느 증권사이트 관계자는 “사이버 증시스타가 되려면 ‘의적’에 가까워야 한다”며 “사이버 분석가들의 이익 집단이 나와도 문제될 것은 없지만 제도권 펀드매니저처럼 이익을 좇다 신뢰를 잃으면 스타로서의 생명력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자 / 이코노미스트 제 533호(200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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