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 협박 받다 야쿠자 통해 문제 해결 ... “내 행동에 후회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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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호 05면

지난 23일 밤 11시쯤, 후지TV 정규방송 도중 화면 위로 뉴스속보 자막이 떴다. “예능인 시마다 신스케, 폭력단과의 교제사실 발각으로 연예계 은퇴.”
은퇴발표가 긴급속보로 뜰 정도의 연예인. 시마다 신스케(島田紳助·55·사진)는 일본 연예계에서 그만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오락 프로그램을 강호동과 유재석이 나눠 갖고 있는 것처럼, 채널 수가 한국보다 많은 일본에서도 주요 예능프로그램은 아카시아 산마, 시마다 신스케 등 수십 년 경력의 몇몇 코미디언 진행자들이 과점한다. 지난주까지 시마다 신스케가 진행하던 정규 버라이어티 방송만 모두 6개. 후지TV의 ‘퀴즈! 헥사곤2’ 등 각 방송사를 대표하는 오락 프로그램들이다.

이영희의 코소코소 일본문화 : 야쿠자 연루로 연예계 은퇴한 일본 최고 MC

십여 년 전, 그는 오사카 지역방송에서 일본 우익의 활동을 비판하는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돼 우익단체의 항의와 협박에 시달렸다. 그는 이십 대부터 알고 지낸 지인, 전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와타나베 지로에게 이 문제를 상담했다. 와타나베는 친분이 있던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 야마구치구미(山口組)의 고위 간부에게 부탁,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이 이어져, 와타나베를 통해 메일을 주고받는 등의 관계가 지속됐다. 이런 사실들이 제보를 통해 소속사인 요시모토 흥업에 알려지면서, 사태를 수습하고자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이번 뉴스에 많은 이가 놀랐지만 “터질 만한 일이 터진 것”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1980년대까지도 조직폭력단이 공연현장의 경비를 도맡거나 직접 기획사 경영에 나서는 등, 연예계와 야쿠자는 밀착된 관계였다. 이후 자정노력이 이어졌지만 소문은 무성했고, 시마다 신스케도 야쿠자와 관련된 구설에 계속 시달려왔다. 그는 천재적인 언변을 갖고 있으면서도 욱하는 성질과 독설을 일삼는 진행으로 열성 팬과 열성 안티팬을 동시에 거느린 연예인이기도 했다. 2004년에는 여성 매니저를 폭행해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2009년에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후배 개그맨들에게 화를 내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되면서 이미지는 더욱 나빠졌다.

은퇴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좋게 말하면 당당하고 나쁘게 말하면 오만한, 기존의 이미지를 그대로 지켰다. “이 정도의 관계가 문제가 될 거라 판단하지 못했다. 생각이 짧았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나를 도와준 데 대해 인간적으로는 (야쿠자 간부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내 행동에 후회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선후배들과 방송 관계자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면서 “아마 몇 명은 있을지 모르는 내 팬들에게도 죄송하다”는 마지막 ‘자학독설’도 잊지 않았다.

기자회견에서 “(야쿠자 간부에게) 종이편지를 쓰거나 사진을 찍은 적은 없다”고 했던 발언이 경찰에 의해 거짓으로 드러나는 등 파문은 확산되는 중이다. 하지만 사건의 실체와는 별도로 “최악의 마무리지만 그 안에서 나만의 미학(美學)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이번 은퇴선언이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단호한 떠남’이었다는 사실만은 인상적으로 기억될 것 같다.


중앙일보 기자로 일하다 현재 도쿄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하고 있다. 아이돌과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을 학업으로 승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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