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 짝사랑한 카다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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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左), 카다피(右)

24일(현지시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시민군이 바브 알아지지야 요새에 있는카다피 관저에서 발견된 사진첩을 살펴보고 있다. [트리폴리 AP=본사특약]

24일(현지시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의 바브 알아지지야 요새에 있는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Qaddafi·69)의 관저(官邸)를 수색하던 시민군들은 깜짝 놀랐다. 카다피의 두툼한 앨범에서 뜻밖에도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57) 전 미국 국무장관(2005년 1월~2009년 1월 재임)의 사진들을 다량 발견했기 때문이다. 연설, 브리핑, 외국 정상들과 면담하는 장면에서 얼굴 부분만 클로즈업한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미 국무부의 빅토리아 뉼런드 대변인은 25일 브리핑에서 이에 대한 질문을 받자 “나는 그 사진들을 보고 싶지 않다”면서 “카다피의 행동을 묘사하는 형용사는 바로 기상천외한(bizarre)과 오싹한(creepy)”이라고 말했다.

 사진을 입수한 미 MSNBC 방송에 따르면 카다피는 오래전부터 라이스를 짝사랑해 왔다고 한다. 2007년 아랍권 위성채널인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선 노골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카다피는 라이스에 대해 “나는 내 사랑하는(My darling) 흑인 여성을 지지한다”며 “나는 그가 상체를 뒤로 젖힌 채 아랍 지도자들에게 지시하는 걸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특히 “리자, 리자, 리자, 나는 그를 아주 사랑한다”고 되풀이해서 말했다.

 1년 뒤인 2008년 9월 라이스가 리비아를 방문하자 카다피는 라마단(이슬람 금식월) 기간임에도 그를 자택에 초대해 전통 요리를 대접했다. 모두 합쳐 21만 달러(약 2억2000만원)나 되는 다이아몬드 반지와 자신의 사진이 담긴 목걸이 선물도 했다. 카다피가 라이스 앞에서 존경의 표시로 오른손을 자신의 가슴에 댄 채 환하게 웃는 사진이 외신으로 전해졌다. 리비아와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던 라이스가 ‘미국의 영원한 적은 없다’고 덕담하자 카다피는 나중에 측근들에게 그를 ‘리자’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감격했다고 한다.

 MSNBC에 따르면 이러한 소식을 전해들은 라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국무장관 퇴임 뒤 스탠퍼드대 교수로 돌아간 그는 오는 11월 두 번째 회고록인 『최고의 영예, 워싱턴 시절의 회고 (No Higher Honor: A Memoir of My Years in Washington)』를 출간할 예정이다.

 ◆카다피는 ‘자아도취자’=미 중앙정보국(CIA)과 20년 이상 일한 정신과 의사 제럴드 포스트 교수는 카다피를 연구한 뒤 26일 영국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카다피는 경계성 인격(borderline personality)을 갖고 있는 자아도취자(narcissist)”라고 분석했다. 우세한 상황에서는 남을 위협하고 불리한 상황에서는 현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그는 “카다피는 국민이 자신에 맞서 봉기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들이 나토군에게 조종되고 있다고 우기고 있을 것”이라며 “자신을 강한 적과 혼자 맞서고 있는 외로운 아랍의 영웅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서울=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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