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emerge] 2002년 월드컵의 글로벌 사회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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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축구가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종목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NBA 농구나 메이저리그 야구, 골프 등이 때로 세계인의 관심을 끌기도 하지만 그 열기는 특정 지역, 일부 계층에 국한될 뿐 축구와 같이 온 지구촌을 들썩들썩하게 만드는 폭발력은 갖고 있지 못하다.

마이클 조던이나 타이거 우즈가 새로운 스포츠의 우상으로 세계 매스컴을 장식하기는 해도 여전히 세계 각국의 도시 공터와 뒷골목, 시골 벌판에는 미래의 호나우도를 꿈꾸며 공을 차는 어린이들로 북적댄다. 은퇴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펠레나 마라도나는 요즘도 움직이기만 하면 매스컴에 이름이 오르내린다.

내가 유럽을 방문해서 보니 주말마다 열리는 축구 시합은 단순히 축구 한 경기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시합이 있을 때마다 경기 전 스타디움 안에 있는 클럽의 리셉션 장에서는 만찬이 열린다. 이 자리에는 지식인, 언론인, 상공인, 예술인 등 지역을 이끄는 리더들이 모여 환담을 나누고 유대를 돈독히 한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다시 만찬장에 모여 각자 그날의 경기를 품평(?)
하고 운 좋게 스코어를 맞춘 참석자에게는 선물을 증정하며 파안대소하기도 하는 광경을 부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기억이 있다.

남미의 축구 열기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내가 만난 브라질의 어느 축구 관계자가 말하기를, 자기네 국민들은 주말에는 축구를 보고,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지난 주말에 있었던 축구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며, 목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이번 주말에 열릴 경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살아간다고 한다.

실력은 유럽, 남미에 비해 떨어지지만 축구 열기에 있어서만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나라들도 많다. 특히 프로축구 한 경기당 평균 관중이 3만 명이 넘는다는 중국 대륙의 열기는 가히 세계 축구의 새로운 희망이다. 아프리카, 동남아, 중동 국가 국민들의 축구를 향한 열정도 대단하다.

축구에 있어서 만은 마지막 미개척지로 남아있던 미국에서, 그것도 남자도 아닌 여자 축구 결승전에 7만 명이 모인 것은 20세기 스포츠사의 일대 사변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축구가 이제 명실상부한 글로벌 스포츠의 대명사로 확실히 부상 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미국의 《뉴욕 타임즈》가 축구를 20세기 인간의 최고 발명품 중의 하나로 선정했다는 사실이 그리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렇게 뜨거운 축구 열기도 수십 억 인구를 4년마다 한 번씩 열광케 하는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 바로 월드컵이 있었기에 진정한 세계인의 스포츠가 될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월드컵은 수십 억 축구교 신도(?)
들이 4년만에 한 번씩 맞는 축제다. 그리고 월드컵을 개최하는 나라는 신도들의 순례지요, 聖地성지가 되는 것이다. 이 축제가 열리는 한 달 동안 인류의 관심은 온통 성지로 쏠리게 된다.

어떤 이들은 월드컵과 쌍벽을 이루는 스포츠 축제로 하계 올림픽을 들기도 한다. 그러나 올림픽에서 월드컵과 같은 全 지구적인 규모의 열광과 인기, 감동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관심의 차이는 현대 매스미디어의 총아인 TV 시청자 수로도 확연히 나타난다. 96년 아틀란타 올림픽의 TV 시청자수가 연 196억 명으로 추정되는 데 비해, 98년 프랑스 월드컵은 그보다 2배가 많은 연 370억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의 시청자 수는 약 600억 명이 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는 최근 중국, 인도 등의 텔레비전 보유 댓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로 볼 때 충분히 가능하다고 한다. 이밖에 광고비, 매스컴 노출 빈도, 그리고 국민적 영향력 등을 따져보아도 월드컵은 인류 최대 규모의 이벤트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프랑스 월드컵이 끝나면서 세계인들의 이목은 다음 대회인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서서히 모아지고 있다. 지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회가 열리던 한 달 동안 나는 프랑스에 머물면서 대회를 지켜보았다. 그때 당시 우리도 4년 후에는 이 거대한 행사를 치르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뿌듯한 마음이 들면서도, 앞으로 할 일이 정말 많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회 기간 중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시라크 대통령은 나에게 “2002년 월드컵은 이번 프랑스 월드컵보다 더 성공적인 대회가 되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로 “한·일 양국 국민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모든 일에 세심하게 배려하고 꼼꼼하게 준비하는 국민들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울러 “일부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과거의 역사로 인해 공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렇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프랑스와 독일 역시 오랜 역사를 통해 적대적인 관계에 처한 경우도 많았으나 지금은 아무런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 2002 월드컵을 준비하고 대회를 치르면서 한국과 일본 역시 지난 날의 일들을 잊고 훨씬 사이가 좋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돌아오는 날 마침 서울은 비가 많이 온 다음날이었는데, 아침 일찍 한강 도로변을 지나면서 우리의 서울이 그 아름다움에 있어 결코 파리에 못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던 기억이 난다. 동시에 국민의 축구에 대한 관심과 월드컵을 잘 치르겠다는 의지도 프랑스인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지금 우리 나라의 현실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큰 변화의 시기에 있다. 어려운 시기, 전환의 시기일수록 국민들이 미래에 관심과 희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1960년대 초에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그 계획 자체도 좋았지만, 그것보다는 최소한 5년 단위로 비전과 청사진을 제시하여 절대빈곤에 시달리던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더 큰 의의가 있다. 월드컵은 스포츠 행사 차원을 초월해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이 역대 월드컵에서도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독일의 경우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2차 대전 패배 후 국가를 부르지 않던 국민들이 이때 처음으로 국가를 불렀다고 한다. 1962년 월드컵은 칠레에서 열렸는데 대회 수개월 전 큰 지진이 일어나 대회 개최 자체가 불투명했었다. 그러나 칠레 국민들은 월드컵이라는 국가적 대사이자 인류의 축제를 위해 모두다 복구에 나섰으며 결국 훌륭히 대회를 치뤄낸 것으로 유명하다.

“Spain is different.” 이 말은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을 준비하는 조직위원회가 스페인 국민들을 위해 사용한 선전구호다. 스페인 정부는 월드컵을 계기로 국가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놓겠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사실 월드컵 개최 전까지 스페인은 독재정치의 나라이자, 유럽의 경제 후진국으로 인식되어 왔다. 더구나 언어까지 서로 다른 각 지방 사이의 지역 갈등도 심각했다. 그래서 선전구호도 아예 “스페인은 달라질 것이며, 달라지고 있고, 이미 달라졌다”는 말을 쓴 것이다.

실제로 대회를 치르고 난 후 스페인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기록했다. 경제 발전, 정치 안정과 함께 관광 수입이 늘어났고, 연방 정부와 지역 정부간에 긴밀한 협력체계가 이루어지면서 지역 갈등도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스페인을 유럽의 2류 국가로 취급하지 않는다.

지난 1998년 월드컵을 치른 프랑스도 월드컵을 통해 사회적 통합을 이뤄낸 모범적인 국가로 손꼽힌다. 프랑스는 그 동안 백인, 아랍인, 흑인 등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되어 있어 반목이 심했고, 특히 사회의 하류층을 이루고 있는 유색인종들에게 대해 인종차별주의적인 정책을 알게 모르게 써왔다. 그 결과 아랍인, 흑인들의 범죄가 날로 심각해져 갔으며 우범지대도 늘어났다고 한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는 뒤늦게 이들을 다시 사회 내부로 끌어들이고 이들이 사회에 적응하도록 돕기 위해 많은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기대했던 정책적 효과는 미미했으며, 불만은 쉽게 해소되지 못했다.

이러한 때에 1998 프랑스 월드컵은 프랑스 정부가 가지고 있던 골칫거리를 말끔히 해결해 주었다. 유색인종을 포함한 프랑스 전 국민들은 갖가지 인종으로 구성된 자국의 대표팀이 승승장구하자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마침내 프랑스가 결승에서 브라질을 누르고 월드컵 트로피를 치켜들자 온 국민이 그들의 국가 ‘라 마르세에즈’를 소리 높여 부르며 자신들이 프랑스인임을 기뻐한 것이다. 프랑스 국가조차 부를 줄 모른다던 알제리 출신의 지단, 아르메니아 출신의 죠르카에프,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선수 튀랑이 프랑스 축구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하나가 됐듯이 그 순간 모든 프랑스 국민들은 월드컵의 깃발, 프랑스의 깃발 아래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월드컵이 단순한 축구 행사만이 아니라 역사 발전과 사회적 통합에 기여하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우리가 2002년 월드컵을 통해서 얻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익이 있겠지만 경제적 효과가 가장 실질적인 것이라 생각된다. 한국개발연구원 KDI의 분석 자료에 의하면 2002년 월드컵을 공동 개최했을 때 우리 나라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생산유발 효과 7조 9,961억 원, 부가가치유발 효과 3조 7,169억 원, 고용창출 효과 24만 4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경제적 효과 외에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축구 팬, 관광객들에게서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관광 수입 역시 막대할 것이다. 프랑스 관광국에 따르면 지난 1998 프랑스 월드컵이 열리는 한 달 동안 프랑스에는 예년의 6백만 명 외에 5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하여 순수 관광 수입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이 대호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의 관광객으로 인해 프랑스 각지의 호텔 예약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많은 축구 팬들이 이웃 나라에서 숙박을 하고 경기를 보러 프랑스에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도 2002년에는 이에 못지 않은 월드컵 관광객을 맞이하리라 예상된다. 월드컵 64경기에 배정된 티켓은 총 320만 장이다. 이중 20만 장은 FIFA와 조직위원회 스폰서, 각국 협회, 기자단 등 대회 관계자에게 배분되고, 300만 장은 일반인들에게 판매된다. 한국과 일본에서 반반씩 경기가 열리므로 한국에서 판매할 수 있는 입장권은 150만 장이다. 이중 우리 한국 사람과 외국인의 구입 비율을 5 대 5로 본다면 외국인들이 약 75만 장을 구입하게 된다. 따라서 한 사람이 평균 두 게임씩 본다고 가정했을 때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수는 약 37만∼40만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직접 경기를 보지 않더라도 월드컵 기간에 맞추어 방문하는 관광객까지 고려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이며, 관광객에 의한 외화 수입은 상당한 수치에 이르지 않을까 추측된다. 이 얼마나 큰 호기인가.

2002년 월드컵은 이러한 경제적 이익은 물론, 한국의 국제적 위상 제고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을 통해 우리가 획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앞서 스페인이나 프랑스의 예에서 보듯이 지역 감정이나 계층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일이다. 월드컵을 통해 우리 국민 모두가 하나의 목표, 하나의 마음으로 단결한다면 이러한 해묵은 숙제도 해결될 수 있으리라 본다.

2002년 월드컵이 앞으로 8백여 일 남았다. 월드컵을 통해 21세기 우리 민족이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로 만들자.

■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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