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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늘어난 자원봉사 … 효율적인 관리 시스템이 따라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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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 산사태를 겪은 남태령 전원마을에서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이 소방대원과 함께 피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조제경 인턴기자]

연인원 7만4632명, 포크레인 96대, 흡입차 148대, 덤프트럭 2478대 …. 지난달 27일 발생한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현장에 투입된 인력과 장비 숫자다. 군·소방인력이 주축이 된 복구·구호 작업에는 그들 못잖게 땀 흘린 사람들이 있었다. 민간 자원봉사자들이다. 휴가를 내고 제주에서 날아온 20인 원정대, 2007년 기름유출 사고를 겪은 70여명의 태안군민 등 전국에서 모인 1만1061명(연인원)이 힘을 보탰다. 하지만 이들의 헌신적 에너지가 효율적으로 발휘되도록 도와야 할 시스템은 허점투성이였다. 급작스런 재난현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을 신속히 배치·조정·지원할 컨트롤타워와 관리체계의 부재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급속한 자원봉사 문화 확산이라는 트렌드에 맞게끔 관련 시스템이 정비돼야 한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폭우·태풍·지진·해일 등의 자연재해, 테러 등의 인적 재해가 이제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자원봉사 선진국이라 할 미국은 1969년 허리케인 카밀의 공습을 계기로, 일본은 1995년 고베 대지진을 계기로 국가차원의 재난구호 시스템이 갖춰졌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처음엔 어디서부터 손 대야 할지 누구도 결정 내리지 못했다. 소방대원들이 물을 퍼낸 뒤 집기를 꺼내려 했는데 토사에 묻혀서 ….” (자원봉사자 전영식)

“봉사자가 1000명이나 몰려와 인력배치가 힘들었다. 빨리 배치를 못해주니 봉사자들이 ‘어디로 가야 하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방배2동 주민센터 직원)

“중장비가 필요한 초기 현장에, 2차 산사태 위험까지 있는데도 봉사자가 투입됐다.” (서초구 자원봉사센터 직원)

"찔리고, 찢어져 꿰매고 …. 부상자가 속출했다.” (서울보건소 한인옥)

“복구·청소·급식·의료봉사 등 역할 분담이 신속히 이뤄져야 했는데 관에선 역부족이었다. 봉사자들이 우왕좌왕할 수 밖에 없었다.” (적십자 서울지사 간부)

복구 초기 현장의 목소리들이다. 첫날부터 전국에서 수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군과 소방대원의 작업을 바라만 보다가 되돌아간 사람도 적지 않았다.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제대로 역할 분담이 이뤄진 건 8월 1일쯤부터다. 서초구와 구 자원봉사센터가 늦게나마 상황을 주도적으로 관리하면서다. 사태 발생 닷새 뒤였다.

재난 재해 현장에서 자주 보는 일이다. 현장이 넓고 산재돼 있을 경우엔 더욱 그렇다. 부쩍 늘어난 자원봉사자나 단체들의 역할이 조정이 안돼 한바탕 혼란이 일어난다. 어느 한쪽엔 봉사자들이 몰리는데 일손이 급한 다른 곳은 방치되기도 하고, 위험한 현장에 성급히 투입됐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도 잦다. 재난에 대처하는 매뉴얼이 제대로 갖춰있지 않은데다 민-관, 민-민의 체계적인 시스템도 제대로 짜여지지 않은 탓이다.

재난 대처 매뉴얼이 필요하다

재난현장 복구를 위한 순서는 ‘현장상황 파악→필요 인력(군·경·소방·공무원 및 자원봉사자 등) 및 장비 파악→인력과 장비의 단계적 배치’다. 피해자 구호와 음식물 공급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각각의 단계 마다 실행·보고·지휘·소통·협력(공조)이 조직적이고 신속하게 이뤄지게끔 종합적인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우면산 현장의 봉사자 배치와 조정을 맡았던 김현숙 서초구 자원봉사센터 소장은 “피해 현장 파악과 봉사자 수요 파악, 봉사자 배치가 모두 원활하지 못했다”며 기본적인 시스템 부재를 이유로 꼽았다. 그는 “군·경·자치구 및 자원봉사센터를 포함한 자원봉사단체가 참여하는 관리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광역 및 자치구 자원봉사센터별로 재난재해 전문 기능별 봉사자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할 것, 재난재해 현장에 배치된 자원봉사자들을 관리할 경험 있는 자원봉사자로 이루어진 재난재해 현장리더를 양성할 것도 제시된다. 재난재해 봉사활동에 대한 교육이나 홍보도 중요한 요소다. 현장에서 봉사자 스스로의 안전관리, 장비 사용법, 지참할 개인물품 등을 평소 교육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름 뿐인 한국재난안전네트워크(KDSN)

큰 재난재해가 발생하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본부장 행정안전부 장관)가 구성되고, 산하 소방방재청이 중심이 돼 실무를 맡는다. 2004년 민간단체 협의체로 결성된 한국재난안전네트워크(KDSN)는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을 협의·조정한다. 140여개 회원 단체를 둔 한국자원봉사협의회와 248개 지역자원봉사센터로 구성된 한국자원봉사센터중앙회, 대한적십자사·대한간호협회·대한의사회·새마을운동중앙회 등 11개 단체가 정회원이다. 또 기업 등 7개 단체가 협력회원이다.

문제는 KDSN이 협의체 구실을 못한다는 데 있다. 이번 중부지방 폭우 뿐 아니라 2007년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도 회원단체들의 자원봉사 활동을 조정하지 못했다. 한 회원 단체 간부는 “지난 7년간 소방방재청이 한 일은 가끔 전국 컨퍼런스나 운영위원회를 주관한 것 뿐”이라고 했다. 그는 “재난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민-관 통신망을 구축해 재해 발생 시 신속히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단법인으로 출범시켜 놓고도 정부가 예산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된다. 신정애 한국자원봉사포럼 사무총장은 “정부가 KDSN에 예산지원을 하되 자율성을 줘 회원단체들이 재난대비 대국민 홍보·교육을 하고, 분야별 전문 NGO와 전문 자원봉사자를 육성하는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호 전문위원(남서울대 교수)·양훼영 행복동행 기자
사진=조제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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