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유통업 경쟁력 깎아먹는‘대규모 소매업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한상린
한양대 경영학부

최근 국회에서는 ‘대규모 소매업(小賣業)에서의 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이하 대규모소매업법)’ 제정을 논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의 제정으로 인해 예상되는 결과에 대해 유통업계에서는 큰 논란이 일고 있다.

 대규모소매업법은 백화점과 대형마트, TV홈쇼핑 같은 대형 유통업체가 납품·입점업체와 거래할 때 부당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내용이 골자다. 물품대금을 깎거나 반품을 할 수 없도록 하고, 계약서를 받기 전에는 납품업체가 생산이나 공급을 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근본 취지는 유통업체와 공급업체 사이의 공정한 거래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모두가 공감한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강화법을 제안하게 된 배경과, 법이 발효된 후 유통산업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는 많은 우려를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이 법안은 기본적으로 유통업체와 납품업체의 거래 관계를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갈등 구조로 바라보고 있다. 물론 그동안 납품단가 인하 요구나 판촉비용 전가 등 일부 유통업체들의 불공정행위가 종종 있었고, 이로 인해 중소제조업체들이 어려움을 겪는 사례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불공정거래 행위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업종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그런 부당행위 사례는 전체 거래의 일부일 뿐이다. 불공정거래를 막기 위해 정부와 학계, 사회단체 등에서 바람직한 방향을 제안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유통 분야의 경우 ‘대규모소매업 고시’를 두고 시정명령이나 과징금 부과 등을 통해 부당행위를 단속하고 예방해 왔다. 그럼에도 이번 대규모소매업법안은 이러한 기존의 다양한 예방·지도·통제 시스템을 일률적으로 법제화해 모든 거래를 규제하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된다.

 예를 들어 법안은 거래 행위에 부당함이 없었다는 것을 대형 유통업체가 입증하도록 했다. 그러나 수많은 유통업체와 제조업체 간의 거래 하나하나가 부당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면 엄청난 거래비용이 발생하고 많은 비효율과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며, 유통산업의 발전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형 유통업체에 대해 이렇게 지나친 규제를 하는 것은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기업의 경쟁력(競爭力), 나아가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유통 분야의 시장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미 소셜 커머스와 모바일 유통이라는 전례 없는 새로운 유통경로가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거운 규제를 가하는 것은 기업이 시장의 환경 변화를 신속하게 반영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국내 총생산의 8%와 전체 취업자의 15%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 유통산업은 1996년 시장 개방 이후 많은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 문화 산업, 환경 경영 등 여러 측면에서 국가 경제와 소비자 후생에 기여했다.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제조 및 납품업체들의 경쟁력 강화와 함께 대형 유통업체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유통업체든 납품업체든 부당한 거래 행위는 막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거래 행위를 일률적으로 법으로 통제하는 일은 재고돼야 할 것이다.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며 국내 유통산업 생태계의 건전한 발전을 기대해 본다.

한상린 한양대 경영학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