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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지중해 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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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구름 걷힌 하늘 아래 고요한 라인강/저녁 빛이 찬란하다 로렐라이 언덕’이란 노랫말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독일 서정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쓴 시(詩)에 가락을 붙인 ‘로렐라이(Lorelei) 언덕’은 절경을 꿈꾸게 한다. 뱃사람들이 요정의 노래에 넋을 잃고 난파했다는 매혹적인 설화까지 겹쳐져 신비감을 더한다. 그러나 막상 가 본 사람 대부분은 실망한다. 해발 130m의 언덕은 감흥을 주기엔 부족하다. 한국의 산과 언덕에 비하면 족탈불급(足脫不及)이요, 강변 풍경은 남한강 여울에 미치지 못한다.

 유럽에는 ‘3대 실망 명소’라는 게 있다. 유명세와 달리 실물을 보면 보잘것없는 것들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로렐라이는 그중 하나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마네켄-피스(Manneken-Pis)도 그런 예에 속한다. ‘소년’을 뜻하는 동상은 ‘오줌 누는 아이’ ‘오줌싸개 소년’으로 불린다. 외국 군대가 브뤼셀에 불을 질렀는데 한 소년이 오줌으로 불을 꺼 도시를 구했다는 등의 그럴듯한 전설이 따라다닌다. 그런 명성을 기대하고 동상을 접하면 낭패감을 느낀다. 높이 61㎝에 불과한 왜소함은 장난감을 보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나마 원본은 박물관에 들어갔고 복제품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 번째 실망은 덴마크 코펜하겐 항구에 있는 인어(人魚)공주 동상이다. 육지 왕자와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한 인어의 애절한 운명을 그린 안데르센의 동화가 담겨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세이렌 은 여자와 새가 결합한 형상이지만 인어로 묘사된다. 그런 탓에 인어는 동화 속 슬픈 운명의 주인공과 신화 속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두 가지 상징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래서 신비한 자태로 앉아있는 반인반어(半人半魚)를 연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코펜하겐 인어상을 보는 순간 상상의 나래는 접는 게 좋다. 덩그렇게 바다 위에 떠 있는 길이 80㎝의 자그마한 동상 자체로는 초라할 뿐이다.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는 ‘지중해의 인어’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청록색 바다와 하얀 건물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기에 붙었다. 트리폴리 함락 작전명이 ‘인어의 새벽(Mermaid Dawn)’이었다. 무아마르 카다피의 42년 철권통치가 끝나면 트리폴리는 변신할 것이다. 이름값 하는 인어의 도시로 거듭날지 언뜻 떠오르는 단상(斷想)이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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