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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시설 장난감·문 손잡이 세균들의 놀이터 될 수 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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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아이의 중이염 발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귀를 살피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세균의 수는 3000여 종이다. 우리 몸 안팎에도 적게는 수백여 종이 살고 있다. 세균은 평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신체 면역력이 떨어지면 활동을 시작해 질병을 일으킨다. 보육시설에 일찍(만 5세 미만) 취원해 단체생활을 하는 ‘얼리 키즈(early kids)’가 여기에 속한다. 집에 있는 아이보다 감염 질환에 취약하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특히 폐렴구균에 따른 중이염·폐렴·수막염은 많은 후유증을 남긴다. 얼리 키즈를 노리는 폐렴구균의 위험성과 예방법을 알아보자.

매년 전세계서 100만명 이상 사망

폐렴구균은 영유아가 걸리는 중증 감염질환의 주요 원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매년 세계에서 100만 명 이상의 소아가 폐렴구균으로 목숨을 잃는다. 이 중 5세 미만이 절반을 차지한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창휘 교수는 “소아의 20~30%가 감염되는 폐렴구균은 코와 목에 많다”며 “출생과 함께 호흡기에 움트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폐렴구균의 종류는 90여 가지다. 이 중 10여 가지 균이 소아를 위협하는 주범이다. 어린이는 이 같은 악성 폐렴구균이 호흡기에 많이 기생한다. 코와 목에 서식하는 폐렴구균은 평소엔 얌전하다. 연세대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김기환 교수는 “하지만 감기 바이러스 등에 감염되면서 면역력이 떨어지면 문제를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폐렴구균에 감염되지 않은 아이는 감염된 아이와 생활하며 호흡기·손을 통해 감염된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장난감, 출입문 손잡이도 감염 매개체다. 어린이끼리 서로 감염원이 되는 셈이다. 김창휘 교수는 “면역력이 약한 2세 미만 영유아 중에서도 단체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얼리 키즈가 감염에 취약하다”고 말했다.

치사율 높은 수막염 일으켜

소아가 폐렴구균에 감염된 후 겪는 질환은 많다. 김기환 교수는 “폐렴구균이 폐에 침입하면 폐렴, 뇌와 척수에 파고들면 수막염, 귀로 들어가면 중이염을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혈액을 감염시키면 균혈증이 나타난다.

 폐렴구균에 따른 폐렴은 치사율이 높다. 평균 10~20%지만 영아나 노년층 같은 고위험군에서는 50%로 뛴다. 수막염도 위험하다. 수막염에 노출된 소아 6명 중 1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창휘 교수는 “생존하더라도 50%는 청력이나 시력 상실, 학습 및 행동장애, 기억장애, 만성두통 같은 후유증을 겪는다”고 덧붙였다.

 어린이 급성 중이염을 일으키는 원인의 50%도 폐렴구균이다. 소아는 귀의 관(이관) 길이가 짧아 균이 들어가기 쉽다. 만 3세 전 영유아의 75%가 한 번은 중이염을 앓는다. 재발률도 높아 50%는 한 번 이상 재발한다.

 중이염이 심하면 고막파열, 청력저하를 부른다. 급성 중이염은 최근 20년간 발병률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특히 6~18개월 영유아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

항생제 내성 높은 한국, 치료 잘 안돼

폐렴구균으로 발생하는 병은 조기 치료를 놓치기 쉽다. 증상이 감기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빨리 발견해도 대부분 항생제로 치료한다.

 하지만 한국·프랑스·스페인처럼 항생제 사용률이 높은 나라는 치료가 잘 안 된다. 김창휘 교수는 “폐렴구균의 항생제 내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치료를 해도 증상이 낫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급성 중이염은 소아에게 항생제 사용률을 높이는 가장 흔한 원인으로 꼽힌다.

 김기환 교수는 “장기적으로 볼 때 얼리 키즈를 폐렴구균으로부터 보호하려면 항생제 치료보다 백신을 통한 예방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영유아용 폐렴구균 백신을 국가 예방접종사업에 포함토록 권고한 바 있다.

 국내에는 2003년부터 폐렴구균 백신이 출시됐다. 지난해에는 소아에게 위험한 10가지 폐렴구균을 예방하는 백신(제품명 ‘신플로릭스’)이 소개됐다. 이 폐렴구균 백신은 면역반응이 향상됐다. 다른 백신과 동시에 접종해도 ‘면역 간섭’이 적다.

 폐렴구균은 백신으로 90% 이상 예방할 수 있다. 생후 2·4·6·12~15개월에 1회씩 총 4회 접종한다.

황운하 기자

얼리 키즈(early kids)=만 5세 미만의 이른 나이에 보육시설에서 단체생활을 하는 아이를 일컫는 신조어다. 조기교육 열풍과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며 늘고 있다. 얼리 키즈는 면역력이 완전치 않아 단체생활을 하면 감염 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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