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21세기판 조선책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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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종욱
동아대 석좌교수·전 주중대사

중국의 첫 항공모함 바랴크함을 둘러싼 미·중 간 신경전이 날카로웠다. 물론 중국의 항모가 당장 미국에 군사적으로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항모 전략을 단순한 물리적 비교 우위의 차원에서만 파악할 수는 없다. 특히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크다. 지난해 여름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을 때 미국의 항모 조지 워싱턴함이 동해에 들어오려 하자 격렬히 반대했던 게 바로 중국이었다. 태평양이 미국의 안방이던 시절은 지났다는 중국의 항변은 한·미 동맹이 냉전의 산물이라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조지 워싱턴함과 중국의 바랴크함이 동해에서 부딪치는 사태가 당장 오지는 않겠지만 양국이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탈냉전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시대가 언젠가는 올 수 있다. 그게 중국 항모의 아버지로 불리는 류화칭(劉華淸·유화청)의 꿈이었다. 이런 고민스러운 상황이 24일로 중국과의 수교 19년을 맞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전략적 현실이다.

 외교·군사적 측면에서 본 한·중 관계에는 적지 않은 실망과 좌절이 있었다. 우리의 잘못도 컸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우리가 중국에 거는 기대가 높았던 만큼 실망과 좌절 또한 클 수밖에 없었다. 교역과 투자를 비롯한 많은 분야에서 최대의 파트너로 등장한 나라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던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외교·군사적으로 두 나라 관계가 아직도 냉전의 골짜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사실이 우리의 전략적 판단을 둔하게 만든 것 또한 사실이다. 결국 중국을 잘못 읽은 것이다. 엄청난 내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부림치는 중국, 그리고 미국과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대차대조표를 정확히 읽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중국의 대외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 대상은 미국이다. 그런 미국과 우리는 동맹관계에 있다. 그게 우리의 전략 지형에서 최우선 고려사항이다. 우리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심각한 전략적 고민을 해온 것 또한 그 때문이다. 해법도 다양하다. 연미화중(聯美和中), 결미연중(結美聯中), 공동진화(共同進化) 등 정도 차이는 있지만, 결국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공존해야 한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말로만 균형을 외쳤지, 이를 전략전술이나 외교정책으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역사를 보면 가장 어려운 외교가 중립노선이다. 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직도 전략동맹인 미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인 중국 사이에서 우리만의 생존공간을 찾지 못한 채 우왕좌왕해 온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한겨울 얼음 석 자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다(氷凍三尺非一日之寒)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북한 정책이 특히 그렇다. 그렇다고 중국과 북한이 항상 호의적이고 전략적 인식을 같이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봄 김구초빙교수로 미국 하버드대에 체류하면서 만난 많은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이 북한을 감싸는 게 꼭 북한을 좋아해서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백악관에서 중국 문제를 책임졌던 한 전문가는 중국과 북한 간의 불신은 자신도 믿기 어려울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북한도 중국과 거리를 두고 싶어한다. 지난 6월 북한 문제에 『출구는 없다(NO EXIT)』는 책을 펴낸 조너선 폴락의 주장이 그렇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거나 미국에 접근하는 것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내년이면 한·중 수교 20년이다. 그동안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질문이 틀린 것이 아니라 명쾌한 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중 관계에서 명쾌한 답을 찾기보다는 다양한 전략적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는 게 우리가 취해야 할 현명한 선택이다.

정종욱 동아대 석좌교수·전 주중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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