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모욕하고 윽박지르는 게 청문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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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재계가 정치권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그제는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 어제는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국회에 출석해 질타받았다. ‘먹통’ ‘야수(野獸)’ 등의 막말도 들었다. 이 때문에 재계는 격앙된 분위기라고 한다. 죄인 취급 당하는데 기업할 의욕이 나겠느냐는 반발이다. 의원들의 질타는 사실 예상됐던 바다. 기업인을 여러 차례 불렀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성사되지 않았다. 조 회장은 국내에 있으면서도 해외 나간 것처럼 위장했고, 허 회장은 어쩔 수 없이 공청회에 참석했지만 그나마 지각했다. 국회 권위가 무시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게 분노로 표출됐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기업인들도 잘못했다.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는 이슈를 국회가 방치할 순 없고, 기업인을 부를 수도 있다. 적극 협조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정치권의 행태는 지나쳤다. 공청회와 청문회는 진지하고 성실해야 한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 청문회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해당 이슈를 놓고 출석한 기업인과 치열하게 토론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예컨대 한진중공업이라면 정리해고는 불가피했는지,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있었는지, 후유증을 최소화할 대책은 충분히 마련됐는지, 향후 해법은 무엇인지 등을 충분히 다뤄야 했다. 하지만 의원들은 조 회장의 답변에는 관심이 없었다. “해고는 살인”이라며 철회하라고 윽박지르고, 국민에게 무조건 사과하라고 강압했다. 청문회 하기 전 “정치생명을 걸고 조 회장을 국민 앞에 무릎 꿇리겠다”고 맹세한 것부터 진실 규명을 제쳐두겠다는 말이다.

 의원이 막말하고, 한풀이하고, 윽박지르라고 청문회 하는 게 아니다. 국회의 이런 문제점은 수없이 지적돼 왔다. 그런데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에게 표를 얻기 위해 ‘재벌 때리기’를 한 것인가. 그런 생각이었다면 착각이다. 오히려 국회의원의 능력과 수준을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청문회·공청회를 운영하니 기업인들에게 참석을 거부할 명분을 주는 것이다. 하려면 제발 좀 제대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