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냥꾼’ 아이컨 M&A 마법 … 죽다가 살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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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구글이 모토로라 모빌리티(옛 모토로라의 휴대전화 부문)를 125억 달러(약 13조6200억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월가는 분주하게 주판을 퉁겼다. 진짜 승자를 헤아려보기 위해서였다. “갑론을박 끝에 칼 아이컨(75)이 가장 기뻐할 사람이라는 데 월가 플레이어들이 대체로 동의했다(로이터 통신).” 국내에선 2006년 KT&G를 공격해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해진 아이컨엔터프라이즈 회장이다. 별명도 무시무시한 ‘상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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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컨은 이번 빅딜로 기사회생했다. 그는 M&A 발표 직후 블룸버그 TV와 인터뷰에서 “아주 기쁘다”고 말했다. 늘 굳어 있고 신경질적인 그의 얼굴에 보기 드물게 환한 미소가 퍼졌다. ‘한 건 잘했다’는 파안대소는 아니었다. 갈 길이 좀 더 남아 있어서였을 것이다.

 애초 아이컨과 그의 파트너들은 2008년 모토로라에 모두 30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번 빅딜로 그들의 지분 가치는 28억9000만 달러(약 3조1500억원)가 됐다. 모토로라의 휴대전화 부문인 모빌리티(13억4000만 달러)와 무선통신장비 부문인 솔루션스(15억5000만 달러)의 지분까지 합한 금액이다. 아이컨과 그의 파트너들은 여전히 원금에서 5% 남짓 손해다.

 그간의 곡절에 대해 아이컨은 “긴 여정이었다”는 말로 에둘러 표현했다. 3년 전 모토로라 주식을 사들인 후 그는 “이통통신을 발명한 모토로라의 특허권만 팔아도 손해보지 않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모토로라 주가는 곤두박질했다. 그는 주당 평균 30달러에 사들였지만 그가 사들인 후 주가는 12달러 선까지 곤두박질했다. 미국 휴대전화 시장에서 애플뿐 아니라 삼성·LG 등에 밀린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아이컨은 익숙한 칼을 빼들었다. 모토로라 경영진 물갈이였다. 여의치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그가 아니었다. 2009년 말 그는 이사회에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바로 기업분할이었다. 아이컨은 “덩치만 커 비효율적인 모토로라를 모빌리티와 솔루션스로 쪼개면 좋은 기회가 올 수 있다”고 주장해 관철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그 ‘좋은 기회’가 왔다. 바로 래리 페이지(38) 구글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의 파격적인 인수다. 페이지는 이달 12일 모토로라 주가(24.47달러)에다 웃돈 15.53달러(63%)를 주기로 했다. M&A가 성사되지 않으면 위약금 25억 달러를 물어야 한다. 페이지가 얼마나 몸 달았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월가는 페이지의 모토로라 모빌리티 인수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15일(현지시간) 구글 주가는 1.1% 정도 미끄러졌다. 반면 모토로라 모빌리티 주가는 비상했다. 그날 하루에만 55.7%나 솟구쳤다. 단숨에 구글이 제시한 인수가격 40달러의 코밑까지 도달했다. 페이지와 아이컨 가운데 누가 진짜 승자인지를 시장은 주가로 말해준 셈이다.

강남규 기자

2006년 KT&G 공격 - 1500억 챙겨

◆칼 아이컨=1936년 뉴욕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났다. 프린스턴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뉴욕대 의대에 진학했으나 마치진 못했다. 25세 때인 1961년 월가에 뛰어들어 기업 사냥꾼으로 성공했다. 2006년 KT&G 주식을 사들인 뒤 적대적 M&A를 선언하는 식으로 주가를 올려 차익 1500억원 정도를 챙겼다. 이런 식으로 일군 그의 재산은 125억 달러(약 13조6200억원) 정도 된다. 포브스지의 올해 세계 갑부 순위 6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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