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봉 기자의 모델 도전기(끝)‘5초의 승부’ 위해 흘린 땀…떨어졌지만 즐기는 법 배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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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2011 SBS 슈퍼모델 선발대회’ 최종 예선이 지난달 29일 경기도 고양시 SBS일산제작센터에서 있었다. 10월 21일 부산 해운대에서 열리는 본선 무대에 오를 남녀 슈퍼모델 후보 각 12명이 결정됐다. 이름이 불리자 아쉬움과 기쁨이 교차하는 가운데 여자 모델들은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렸다. 탈락한 몇몇 남자 모델들은 ‘내가 못한 게 뭐냐’는 듯 잔뜩 굳은 표정으로 무대를 빠져나갔다. 기자도 결국 본선 무대를 앞두고 탈락했다. 한 달간 흘린 땀의 양이 승부를 결정했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SBS 슈퍼모델 사무국 제공

이 사진을 보면 기자는 ‘전신 성형’의 유혹을 느낀다. 무대에 올라 체형·자세 심사를 받고 있는 기자(왼쪽에서 둘째)와 참가자들.


한번의 경험보다 중요한 건 부단한 연습

최종예선 심사는 1차 예선과 비슷했다. 워킹과 자기소개, 그리고 아웃도어 브랜드를 입고 런웨이를 걷는 간단한 패션쇼. 하지만 막상 무대에 서자 워킹부터 엇박자가 났다. 업무를 핑계로 반도 참석하지 못한 교육이 새삼 뼈아팠다. 교육기간을 거치며 다른 동료는 노련해졌다. 한번의 경험보다 연습은 훨씬 소중했다.

이번 최종 예선에는 지난번과 달리 장기 자랑을 선택 사항으로 두었다. 기자(1m81.7㎝)보다 키가 작은 유일한 남자 모델 참가자였던 이호승(26·1m81.6㎝)씨는 “장기 자랑으로 웃통을 벗을지 말지 고민된다”고 했다. 그는 무대에서 워킹 중 윗옷을 벗었고 탄탄한 가슴 근육과 선명한 복근으로 심사위원의 눈을 사로잡아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렇게 제대로 된 장기 자랑을 한 이는 드물었다. 어설픈 연기와 노래로 심사위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경우도 있었다. 심사위원인 박항치 디자이너는 “노래를 부른 참가자 중 얼굴을 지나치게 찡그리는 등 불필요한 표정과 몸짓을 보인 이가 많았다”며 “무대에 선 모델은 보는 이를 고려해 이런 부분까지 모두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무대 중압감 이기는 모델이어야 살아남는다

SBS 일산제작센터에서 지난달 29일 열린 ‘2011 SBS 슈퍼모델선발대회’ 최종 예선에서 기자(왼쪽에서 둘째)와 참가자들이 무대에 오르기 직전 ‘강렬한 눈빛’을 가다듬고 있다.

합격한 모델의 캐릭터는 저마다 달랐다. 남자 모델은, 누나들의 마음을 흔들 만큼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귀여운 이도 있었고, 구릿빛 피부에 눈빛이 강렬한 터프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었으니 무대를 즐길 줄 안다는 점이었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모두 엄살을 떨었다. 하지만 긴장의 강도와 상관없이 실력은 무대에서 드러났다. 합격한 이들은 무대에서 한층 여유가 있어 보였고, 실수를 해도 어색한 티를 드러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자신감이 여유로 드러난 것. 합격자들은 3일 오후 부산 해운대 특설 무대에서 열린 패션쇼에서 이를 여실히 드러냈다. 아직 표정이 어색했고 동선이 흐트러지는 등 아마추어의 티가 묻어 있었지만 무대를 즐겼고 실수를 웃어 넘길 줄 알았다. SBS 슈퍼모델 사무국 이상수 팀장은 “진행 중독에 걸렸다는 유재석처럼 무대 중독에 걸린 이만 프로 모델이 된다”며 “무대의 중압감을 극복하고 즐길 줄 알아야 관객이 보기에도 아름다운 모습과 옷이 담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성형 유혹까지 느껴야 했던 도전

지난 4월 시작해 4개월 남짓 달려온 슈퍼모델 도전기는 끝을 맺었다. 배가 고파서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그 자체에 처음으로 죄책감을 느꼈고, 일상의 걸음걸이에서도 모델의 ‘워킹’을 닮으려 애썼다. 하지만 ‘노력 그 자체’는 다른 지원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몸과 자세는 결코 뚝딱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기회였다. 5초의 승부라는 모델, 하지만 이는 그동안 흘려왔던 땀의 승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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