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곤의 하인스 워드’ 한국계 전사 벤 헨더슨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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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15일(한국시간) 미 위스콘신주에서 열린 종합격투기 UFC 경기에서 한국계 벤 헨더슨이 짐 밀러에게 하이킥을 날리고 있다. 오른쪽 어깨에는 ‘전사’, 옆구리에는 ‘힘·명예’라고 쓴 한글 문신이 보인다. 승리한 후엔 한국말로 “싸랑해요”를 연발했다. [게티이미지]


“한국 팬들 많이 많이 싸랑해요, 어머니 싸랑해요.”

 15일(한국시간) 미국 위스콘신주의 브래들리 센터. 땀 투성이 흑인 청년의 입에서 한국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미국 종합격투기 대회인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경기장을 찾은 수만 명이 이 모습을 지켜봤다. 전파를 통해 세계 격투기 팬이 그의 말을 들었다. 마이크를 잡은 그의 팔뚝에는 ‘전사’라는 한글 문신이 선명했다. 그의 오른쪽 겨드랑이에는 ‘힘’ ‘명예’라는 한글 문신이 보였다.

 흑인 청년은 한국계 종합격투기 선수인 벤 헨더슨(Ben Henderson

·27)이다. 그는 광복절을 맞은 한국의 격투기 팬들에게 값진 승전보를 전했다. UFC LIVE5에서 짐 밀러(27·미국)를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꺾었다. UFC 무대 2연승.

 헨더슨은 미국인들이 가득한 경기장에서 사회자가 따로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한국말로 한국팬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했다. 그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크다. 그는 한국인 어머니와 주한미군이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태권도를 수련했으며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로 활약하다 격투기에 입문했다.

 헨더슨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뿌리는 한국이라고 말해왔다. 경기에 입장할 때마다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나오는 것도 이러한 믿음 때문이다. 이날 경기에서도 어김없이 팬들의 응원문구가 가득 적힌 태극기를 들고 나왔다. 만약 UFC 경기가 한국에서 열린다면 ‘무조건 출전하게 해달라’고 사무국에 요청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헨더슨의 모습은 미식축구 스타 하인스 워드(35)를 떠올리게 한다. 워드도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혼혈이다. 그는 수퍼보울에서 우승한 뒤 한국을 방문해 팬들의 성원에 감사를 표하고 다문화 어린이를 위한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등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물론 아직 워드와 헨더슨을 비교하긴 어렵다. 워드는 미국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인 수퍼보울에서 우승(2006년)과 최우수선수를 동시에 차지한 최고의 스포츠 스타다. 반면 헨더슨은 타이틀과 거리가 먼 유망주이자 미완의 대기(大器)다.

 그러나 그가 ‘옥타곤(팔각형 모양의 UFC 링)의 하인스 워드’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헨더슨은 이날 밀러를 심판 전원일치 판정으로 가볍게 제압했다. 밀러는 헨더슨에게 덜미를 잡히기 전까지 UFC 7연승을 기록 중이었다.

현지 언론도 밀러의 승리를 점쳤다. 밀러가 헨더슨을 이긴 뒤 라이트급 타이틀 매치 도전권을 얻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헨더슨은 그런 예상을 뒤엎고 새로운 강자로 우뚝 섰다.

 헨더슨에게는 흑인 특유의 유연함과 파워가 있다. 그러나 한국인 특유의 겸손함과 성실성도 갖추고 있다. 옥타곤에 오르면 거침없는 파이터지만 경기가 끝나면 주변 사람을 챙기는 정감 넘치는 모습이 영락없는 한국 사람이다.

헨더슨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나 말고도 같이 훈련하는 체육관 후배들 중에 젊고 강한 친구들이 많다. 이들도 많은 주목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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