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북한 주민이 통일 원한다고 할 수 있게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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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989년 9월 중순 이후 동독 주민들이 대거 서독으로 탈출하면서 갑작스럽게 이뤄진 독일 통일은 감동의 드라마였다. 특히 분단된 채 남북한이 반목하는 상황에 익숙한 국민들에겐 “우린 언제나 저럴 수 있을까”라는 회한(悔恨)마저 안겼다. 1994년 북한 지도자 김일성의 사망으로 우리도 독일처럼 돌연 통일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았지만 물거품이었다. 뒤이어 추진된 ‘햇볕정책’으로 남북교류가 전에 없이 활발해지고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통일 기대는 다시 서서히 높아졌다. 그러나 북한이 서해에서 도발을 거듭하고 핵개발을 강행하면서 ‘햇볕정책’은 ‘퍼주기’라는 비판에 몰려 좌초했다.

 이런 탓인지 최근 몇 년 사이 국민들 사이에 통일 기대감은 매우 약해지고 있다. 지난해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65%가 ‘시간을 두고 충분히 준비한 뒤 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럼에도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논의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세 도입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 계기였다. ‘남북공동체 조성 방안’과 ‘통일재원 마련 방안’을 연구해온 통일부는 2030년 통일되는 것을 전제로 통일 첫해 55조~249조원의 통합 비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통일 비용에 대한 추계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첫 사례여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문제는 통일 비용을 집행할 수 있는 상황이 정말 닥쳐올 수 있느냐다. 이런 점에서 동독의 마지막 군축·국방장관이었던 라이너 에펠만 목사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 주목된다. 그는 “북한 주민 다수가 통일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북한에 더 다가서려는 남한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삶의 품격이 있는 남측 체제’ ‘굶주림 등 북한 주민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려는 남측 국민’이 되면 북한 주민이 남측 주도의 통일에 호응할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초대 통일독일 외무장관이었던 한스 디트리히 겐셔가 DJ정부 시절 우리 측 한 장관에게 했다는 “통일을 의식하지 않고 꾸준히 지원하다 보니 통일이 왔다”는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통일부의 연구 결과엔 에펠만 목사 등의 충고에 부합하는 대목은 없다. 그렇다고 그저 기다리기만 해도 20년 뒤쯤 통일된다고 정부가 생각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 정권을 포함해 과거 20년 동안 역대 정부들이 통일문제에 대해 취했던 정책들 중에 에펠만 목사의 관점에 부합되는 정책은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오늘 있을 대통령의 8·15 경축사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