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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경부암 백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31호 31면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후 연구과정에 있던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에이즈 바이러스를 연구하던 필자는 한동안 한국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한국 P대학의 한 교수가 에이즈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언론매체에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필자가 에이즈를 연구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 부모님과 지인들은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의 과학자가 에이즈 문제를 다 해결했는데, 넌 이제 뭐 할 거냐”고 걱정하며 질문하셨다.

황당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부모님조차 아들의 말보다 언론보도 내용을 더 신뢰하시는 듯했다. 과장된 언론보도가 많은 사람에게 잘못된 희망을 불어넣고 그들을 엉뚱한 곳으로 이끌어 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데자뷰 현상처럼 최근 몇 년 동안 필자는 비슷한 질문을 다시 받고 있다. 자궁경부암 백신에 관한 것이다. 2006년, 2009년에 각각 미국 식품의약국 허가를 받은 ‘가다실’과 ‘서바릭스’는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파필로마 바이러스의 감염을 예방하는 백신으로 개발됐다. 이 바이러스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필자는 또다시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백신으로 다 해결된 암을 왜 연구하느냐고.

물론 10년 전에 받았던 에이즈 백신에 대한 질문과는 상황이 다르다. 자궁경부암 백신은 그 효과와 안정성이 입증됐기 때문에 전혀 엉뚱한 질문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자궁경부암 백신으로 파필로마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모든 자궁경부암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첫째, 자궁경부암 백신은 예방용일 뿐 치료용이 아니다. 파필로마 바이러스가 암을 일으키는 데는 감염으로부터 20∼30년 걸린다. 일반적으로 이 바이러스의 첫 감염은 성생활을 시작하는 10대 후반∼20 대 중반 사이에 일어나고, 이로 인한 자궁경부암 발병은 40∼50대에 나타난다. 그래서 자궁경부암 백신의 임상시험·허가도 13∼17세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자궁경부암이 줄어드는 백신의 직접적인 효과는 2030년이 넘어서야 볼 수 있고,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에겐 아무런 효과가 없다.

둘째, 현재의 자궁경부암 백신은 가장 흔한 파필로마 바이러스 유전자형인 HPV16과 HPV18로 구성돼 있다. 이는 전체 자궁경부암 발병의 약 70%에 해당한다. 반면 파필로마 바이러스는 현재 거의 200종의 다른 유전자형이 발견돼 있고, 그중 15∼20개 유전자형이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 30%의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다른 유전자형 파필로마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은 현재의 백신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장기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계속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세 번의 접종으로 몇 년 동안 예방효과가 지속될지에 대해 아직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미주리대의 하퍼 교수는 지난해 ‘랜셋 전염병학’에 기고한 글을 통해 자궁경부암 백신 개발에도 불구하고 자궁경부암은 더 늘어날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심지어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조차 백신을 접종하면 괜찮을 거라고 너무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서다. 이러한 오도가 암 발생을 오히려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궁극적인 질문인 “우리 딸아이에게 자궁경부암 백신을 접종해야 하는가”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분명히 효과가 있는 안전한 백신이고 제한된 범위 안에서 암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자궁경부암을 막지는 못할 것이어서 무분별한 성생활을 자제하고 지속적인 정기검진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더 나은 예방과 치료를 위해 멈추지 않고 연구에 몰두해야 할 것이다.



편도훈 경북대 미생물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바이러스학과 종양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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