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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대학가요제 출신 식품·환경공학자 이기영 호서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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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이기영(54·자연과학부 식물생물공학 전공) 호서대 교수는 식품공학자이며, 환경공학자다. 좋은 먹을거리는 맑은 환경에서 나온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동시에 그는 작곡가요, 가수다. 그가 작곡한 노래 몇 곡은 초등학교·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 ‘김치 된장 청국장’ ‘지구를 위하여’ ‘한강은 흐른다’ 등 음식과 환경의 소중함을 설파한 노래들이다. 2001년 이후 현재까지 여섯 장의 음반을 냈다. 이런 노력 등을 인정받아 천주교 환경상(1998년), EBS 자연환경대상(2003년), 환경의 날 대통령 표창(2006년)을 받기도 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한강 행주나루 인근에서 자랐다. 지금도 한강변에서 농사를 지으며 웬만한 채소는 직접 키워 먹는다. 그리고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습관을 실천하고 있다. 20여 년째 자기 연구실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다. 학교에선 반바지 차림에 맨발로 지낸다. 집에 있는 에어컨도 지난해 여름 이후로 켜 본 적이 없다 한다. 지독할 정도로 음식·환경 철학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자신의 음식 철학을 담아 『음식이 몸이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우리 몸과 지구는 음식을 통해 소통한다. 자연철학에 기반한 우리 한식이 가장 건강한 음식’이라는 게 그가 던지는 메시지다. 경기도 고양시 자택과 행주나루 인근 그의 텃밭에서 이 교수를 인터뷰했다. ‘노래하는 교수’답게 그는 밭에도 기타를 들고 나갔다.

글=성시윤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유기농 음식이 몸에 좋다’는 것은 너무 익숙한 상식인데요.

 “그냥 좋다고만 알지, 왜 좋은지를 몰라요. 저는 농약을 쳐서 만든 음식은, 제대로 된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식물의 향이나 맛은 벌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식물 스스로 만드는 면역물질이거든요. 그런데 농약을 치면 벌레가 없어져서 식물이 면역물질을 안 만들어요. 식물에 들어 있는 성분들이 우리 몸에서도 면역물질로 작용하거든요. 면역물질이 없는 음식을 먹으면 사람도 당연히 면역시스템이 약화되죠. 그래서 아토피나 암이 생기는 원인이 되기도 하죠.”

●한식을 권하는 것은 왜인가요.

 “음식은 되도록 자연상태 그대로 먹는 게 좋아요. 우리나라 음식은 자연철학을 고스란히 다 보여주고 있어요. 우리는 나물이나 야채를 쌈으로 그냥 먹잖아요. 가공을 하더라도 자연의 음식물을 이용한 발효 과정을 통해 영양가를 높이죠. 영양가를 파괴하는 게 아니고요. 우리 선조들은 그걸 이미 다 알았어요.”

●그런 생각들을 노래로 만드셨죠. 원래 노래를 좋아하셨나 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제 친구한테 기타를 30원에 처음 샀어요. 자기 형 기타였는데, 기타 줄도 없는 것을 친구가 형 몰래 제게 판 것이죠. 그것으로 제가 혼자 기타를 배웠는데 중학교 때 매일 몇 시간씩 기타를 쳤어요. 고교 입학시험을 봐야 하는데 매일 기타만 치니까 아버지가 기타를 부숴서 아궁이에 집어넣었죠. 그래서 아버님하고 대판 싸웠는데, 아버님은 지금도 그걸 노여워하고 계세요. 일주일을 내가 밥을 안 먹고 막 저항을 했으니까.”

●그렇게 노래를 좋아하는데 가수 될 생각은 안 하셨나요.

 “당연히 했죠. 대학교 2학년 때 제가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도 나갔어요. 700개 넘는 팀이 나왔는데 몇 번의 예선을 거쳐 스무 팀을 뽑았어요. 저희도 본선에 진출했어요. 20여 명이 방송국 공개홀에서 리허설을 하는데, 우리 바로 옆 번호가 심수봉이었어요. 배철수·노사연 같은 가수들이 같이 리허설을 했죠.”

●본선에도 나갔다니 대단한 실력이었군요.

 “그때 제가 남성 듀엣으로 나갔는데, 같이 나간 친구가 무슨 사정이 생겨서 실제 본선에는 못 나갔어요. 저랑 보성고 다닐 때 매일 같이 기타 친 친구였는데….”

●그때 본선에 나가 수상이라도 했으면 인생이 달라졌겠군요.

 “완전히 달라졌죠.”

●본선에서 혼자라도 부르면 되지 않습니까.

 “그건 안 되죠. 기타 두 대로 화음 맞춰 부르는 노래였거든요.”

 대학가요제 때 불렀던 노래는 환경이나 음식에 관한 노래는 아니었다. 첫사랑에 관한 노래였다 한다. 독일 베를린공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2000년 이후 가수의 꿈을 이어나갔다. 그가 2008년에 음반으로 만든 노래 ‘한강은 흐른다’는 『한국 가곡 100곡집』 같은 책에도 포함돼 있다. 이 교수는 “바리톤 최현수씨가 조만간 내는 음반에 ‘한강이 흐른다’가 수록돼 있다”고 자랑했다. “최현수씨면 세계 최고급 바리톤 아닙니까. 제 노래가 그만큼 인정을 받았다는 거죠.” 이 노래는 중등 음악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이처럼 ‘연예인’ 기질이 풍부한 이 교수는 KBS·교통방송 등에서 환경과 건강을 주제로 특강하는 코너를 맡기도 했다. 그는 외부 특강에서 노래 공연을 빠뜨리지 않는다.

 최근에도 김포시 농업인 200명 앞에서, 그리고 광주교육청에서 생태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했다. “제가 노래하면 아주 난리가 나요. 전직 장관보다도 제가 더 인기입니다.” 그는 인터뷰 중 “한번 들어보라”며 노래를 수차례 뽑았다.

●교수님댁 밥상에는 실제 어떤 음식이 오르나요.

 “아침저녁으로 우리 텃밭에서 야채를 따서 샐러드를 많이 올립니다. 그걸로 국도 끓여 먹고요. 우리가 키워 먹는 야채는 농약을 안 쳐서 쓰고 텁텁하고 그래요. 식물들이 벌레들을 내쫓으려고 면역물질을 만드니까, 향기가 아주 진하고요.”

 그는 지난해에 담갔다는 김치를 꺼내오며 취재진에게 시식을 권했다. “이렇게 싱싱한 김치 먹어본 적 있어요. 1년 지났는데도 여전히 아삭아삭하죠?”

●평소 밥상머리 교육을 강조하신다면서요.

 “유대인들이 가정교육으로 유명하잖아요. 그게 다 밥 먹을 때 나와요. 제가 미국 텍사스보건대에서 교수를 할 때 보니까, 유대인들은 연구실에 있다 집에 가서 저녁 먹고 다시 나오더라고요. 제가 자연철학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잘 안 들으려 하는데, 교육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어요. ‘가족끼리 밥 먹으면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한다’ 이런 얘기 하면 훨씬 더 잘 듣고요. 방송국에서 실제 조사한 것인데, 전교 1등 하는 학생 100명을 조사해보니 가족들끼리 모여서 밥 먹는 횟수가 보통 애들보다 무려 세 배나 많대요.”

 그는 2002년 ‘식생활 10계명’을 만들어 발표하기도 했다. ‘감사하며, 골고루, 싱겁게, 꼭꼭 씹어, 적게 먹는다. 채식을 늘리고, 유기농산물을 쓰고, 발효식품을 즐기고, 화학조미료를 안 쓰고, 패스트푸드를 피한다’는 내용이다.

●채식주의자이신가요.

 “육식을 안 하진 않아요. 왜냐면 인간이 채식동물은 아니니까. 하지만 육식을 지금의 10분의 1 정도로 줄여야 해요. 그럼 지구온난화를 줄일 수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가축 300억 마리가 내뿜는 이산화탄소가 전체 이산화탄소 발생량의 20%나 돼요. 그러니 육식보다는 채식을 하자는 겁니다. 제가 권하는 것은 누구든 한 뼘의 땅을 빌려 텃밭 농사를 지으라는 거예요. 식물을 가까이 하면 행복해집니다. 사실 우리가 먹는 건 에너지거든요. 물질과 에너지는 사실 하나예요. 석유 문명 이후로 우리가 먹는 것을 키우는 데 석유가 들어가고, 화학물질이 들어가고 있죠. 지금 지구온난화의 60%의 책임이 먹을거리 변화에 있어요. 특히 문제가 되는 게 육식이에요. 고기 1㎏ 생산하려면 콩·옥수수 10㎏이 들어요. 고기를 먹으려다 전 세계적인 식량 부족이 일어나는 것이죠.”

j캅테일 >> 독일에서 동양철학 배우다

이기영 교수를 유기농 농산물 옹호자로 만든 것은 ‘헤르만 바그너’라는 이름의 독일인 음악가였다고 한다. “제가 1985년 독일 베를린공대에 유학 가서 ‘바그너’라는 할아버지 댁에서 1년을 얹혀 살았어요. 음악 명가 바그너 집안의 일원이셨지요. 베를린 필하모니 바이올리니스트를 지내셨죠. 매달 제자들을 초청해 집에서 하우스 콘서트를 여셨어요.”

 이 교수 부부는 유학 초기에는 고기를 많이 먹었다.

 “독일은 고기가 싸니까요. 그런데 그분은 채소로만 아침을 드시고 저녁은 꼭 유기농 식당에서 드셨어요. 저희에게도 자주 유기농 식사를 대접해 주셨죠.”

 바그너 할아버지는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냉수마찰을 하고 가부좌를 한 채 명상을 했다고 한다.

 “그때 팔순이 넘으셨는데, 겨울에도 딱딱한 대나무침대에서 담요 한 장 덮고 주무셨어요. 저는 서양의 발달된 과학기술에 대한 동경을 갖고 유학을 갔죠. 그런데 바그너 할아버지에게 노자와 장자의 동양철학을 배운 셈이죠. 5년 전엔가 101세로 돌아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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