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 등심 6900 → 4500원 … 정용진의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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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부회장

기자가 물었다. “꿈이 뭐냐”고. 정용진(43)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대답했다. “한우값을 낮추고 싶다. 서민들이 왜 이리 비싸게 한우를 사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고 싶다.” 그리고 그는 단서를 달았다. “단, 축산농가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축산농가와 소비자, 유통업자 모두가 이익을 얻는 모델을 만들고 싶다.” 올 초 정 부회장과의 대화 중 한 토막이다. 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이마트는 11일 한우의 유통단계를 확 줄이고, 가공·포장을 직접 해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한우값을 20% 이상 낮출 수 있는 새로운 축산물 유통 시스템을 선보였다. 이를 위해 도축된 한우를 전문적으로 가공하는 ‘이마트 미트센터’ 가동에 들어갔다.

 ‘정용진의 한우값 낮추기 프로젝트’는 두 개 부문에서 진행됐다. 축산농가가 기른 한우가 산지수집상-우시장-중간상·도매상을 거쳐 도축장으로 오는 과정과, 도축 후 가공업자-수집상-정육점을 거쳐 소비자에게 가는 과정이다. 농가에서 소비자까지 무려 9단계를 거치는 동안 우시장에서 ㎏당 7576원 하던 한우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게 되고, 등심의 경우 ㎏당 약 6만9000원(100g당 6900원)까지 올라간다. 이마트는 우선 위탁영농 방식을 통해 도축 전 단계의 거품을 뺐다. 이마트가 직접 송아지를 사서 과학적 시스템이 검증된 농가에 사육을 맡기는 것이다. 또 도축된 한우가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단계도 크게 줄였다. 연면적 7017㎡의 미트센터를 세워 직접 등심·갈비·양지로 가공해 포장한 뒤 전국 136개 점포에 공급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마트는 유통을 9단계에서 5단계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값은 부위별로 20~30% 저렴해질 전망이다. 이마트는 내년 초에는 ㎏당 약 4만5000원(100g당 4500원)에 등심을 팔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마트 미트센터’가 11일 경기도 광주에 문을 열었다. 최병렬 이마트 대표(오른쪽 둘째)가 추석용 축산물 선물세트 생산 라인에서 품질 점검을 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축산물 유통구조 혁신은 역대 정부가 수십 년째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일이다. ‘정용진 프로젝트’도 2009년 12월 시작돼 꼬박 21개월이 걸렸다. 그는 최병렬 이마트 대표에게 프로젝트를 맡겼다. 최 대표는 벤치마킹할 수 있는 모델을 찾아 세계 선진 축산현장을 돌았다. 하지만 월마트·타깃 같은 세계적 유통업체들은 공장 방문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곡절 끝에 미국 위스콘신의 한 축산공장에서 자동화된 쇠고기 가공시설을 보고서 최 대표는 무릎을 쳤다. 가공단계 거품을 줄일 수 있는 롤 모델을 본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이마트는 축산농가에 이익이 돌아가도록 각별히 신경 썼다. 이마트는 송아지 위탁 사육농가가 지금보다 10% 이상 수익을 더 누리도록 시세를 쳐 줄 예정이다. 중간상을 생략하는 데서 생기는 이익을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현재 위탁영농을 통해 생산되는 한우는 이마트 한우 판매량의 20%에 불과하다. 이마트는 앞으로 위탁영농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축산농가로서는 다른 이득도 생길 수 있다. 한우값이 떨어지면 한우가 비싸서 수입산 쇠고기로 옮겨 갔던 소비자들이 한우를 다시 사 먹게 될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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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부회장도 걱정은 있다. 기존 유통단계에 걸쳐 있는 협력회사의 영업이 위축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영업 토대가 흔들릴 수 있는 중간상들의 반발도 변수다. 이마트 고위 관계자는 “모든 이가 박수를 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한우 유통구조를 바꿀 수 없고, 한우가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며 “추가 문제는 계속 해법을 찾아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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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신세계 대표이사(총괄)

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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