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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성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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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선이 자주독립된 것이 정부만의 경사가 아니라 전국 인민의 경사이므로 인민의 돈을 가지고 이것을 꾸며 놓는 것이 나라에 더 큰 영광이 될 것이다’. 1896년 7월 4일자 독립신문 사설의 한 대목이다. 독립문·독립공원을 국민성금을 모금해 건립키로 한 독립협회 결정을 다룬 내용이다. 이때부터 1년여 동안 거국적으로 모금된 금액이 그때 돈으로 5897원이다. 건립 비용 3825원을 훌쩍 넘긴 걸 보면 당시 모금 열기가 뜨거웠음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국민성금은 온 국민의 뜻을 한데 담는 그릇 같은 거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처럼 국민성금 모금이 활발한 나라도 없을 듯싶다. 일제 강점기 직전인 1907년 “우리 2000만 동포가 담배를 석 달만 끊고 그 돈을 아껴 20전씩만 모은다면 나라 빚 1300만원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며 ‘국채보상운동’을 벌였던 민족이 아니던가.

 해방 뒤 가난한 나라 살림에도 국민성금은 큰 보탬이 됐다. 1949년 캐나다에서 들여온 훈련기인 건국기(建國機)와 6·25전쟁 초기 북한 특수전부대 수송함을 격파한 우리 구축함 ‘백두산호’는 모두 국민성금으로 마련한 것이다. 1948년 생모리츠 겨울 올림픽과 런던 올림픽에 우리나라 최초로 선수단을 파견할 때도 출전 경비의 상당 부분을 국민성금에 기댔다. 천재지변 때마다 등장하는 구호 성금과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은 지금껏 마르지 않는 대표적 국민성금이다. 그야말로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인정(人情) 그 자체다.

 그렇다고 국민성금에 대한 국민의 시각이 곱기만 했던 건 아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성금이 ‘강요된 헌금’인 경우가 적잖아서다. 1986년 학생 한 명당 액수까지 정해 사실상 ‘징수’를 했던 ‘평화의 댐’ 건설 성금이 대표적이다. 70년대 ‘방위 성금’이나 정치자금 모금 통로로 악용된 ‘새마을 성금’도 국민 ‘성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인 2008년 1월 불타버린 숭례문 복원을 위해 국민성금 모금을 제안했다가 국민 반발을 산 일도 있다. 국민성금은 자발적일 때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탓이 크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 방안으로 ‘국민성금 모금’을 거론해 여론이 시끄럽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싶지만, 번지수가 한참 틀렸다. 사기 당한 어려운 사람들 생길 때마다 국민에게 손 벌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국민성금의 진정한 의미부터 다시 돌아볼 일이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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