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정몽구 서둘러 새벽 출근 … 금융 패닉 비상대책 회의 주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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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건희 회장(左), 정몽구 회장(右)


‘침과대단(枕戈待旦)’.

 포스코연구소는 지난 주말 경영층에 하반기 경영 방향을 보고하면서 이 사자성어를 인용했다. 창을 베고 자며 아침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위험에 철저히 대비하자는 의미였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의 여파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의 분위기는 이 사자성어와 빼닮았다. 재계는 9일 비상 모드에 돌입했다. 상당수 기업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가동했던 위기 대응 계획(컨틴전시 플랜)을 다시 꺼내 들었다. 경영진들은 실물경기 급랭 여부, 현금 확보 방안, 원자재 가격 동향 등을 제로 베이스에서 점검했다.

◆위기 대응 체제 가동=그룹 총수들이 전면에 나섰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9일 평소보다 30분~1시간 이른 오전 7시45분 서울 서초 사옥으로 출근했다. 이 회장은 곧바로 집무실로 올라가 김순택 미래전략실장으로부터 글로벌 경제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오전 7시 정몽구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사장단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오전 8시30분 그룹 임원 7명과 함께 정례 부문장 회의를 했다. 정 회장은 “사태가 심각해지면 시중 유동성이 악화될 수 있는 만큼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후폭풍에서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미국과 유럽의 더블딥(침체에서 회복되는 듯했던 경기가 다시 침체하는 것)과 원화가치 불안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번 사태로 가뜩이나 침체된 반도체·디스플레이·PC 시장이 더욱 얼어붙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가격이 바닥권인 반도체 분야는 20나노급 등 미세공정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디스플레이 패널과 TV 시장에서는 발광다이오드(LED) TV, 3D(3차원) TV 같은 프리미엄 제품 위주의 마케팅 전략을 펼쳐 위기 상황에 대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미국 자동차 시장의 냉각을 우려하고 있다. 올 상반기 5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의 주 요인이 미국 시장의 호조였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국·유럽에서 더블딥이 오면 자동차 판매 신장률이 큰 중국 등 신흥국가의 경기둔화로 이어져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판매가 급속히 위축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선업계도 위기를 피해갈 수 없는 형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개되면 선주사들이 선박 발주에 따른 금융조달에 문제가 생겨 조선업도 악영향을 받는다”며 “자동차 같은 소비재처럼 당장 타격을 받기보다는 시차를 두고 후폭풍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항공업계는 원유 수급 불안을 걱정하고 있다. 원화가치가 급락하면 원유수입 부담이 커지고, 유가가 급락하면 산유국들의 공급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박봉균 SK에너지 사장은 이날 2008년 가동했던 비상TF를 재가동했다. 박 사장은 회의에서 “비상 상황에 대한 노하우가 축적돼 있는 만큼 과거의 경험을 잘 살려 위기를 기회로 삼자”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GS칼텍스는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엄태진 전무가 환리스크 관리 전략회의를 주재했다.

 ◆“그래도 투자는 한다”=주요 기업들은 올해 예정했던 투자를 계획대로 집행하기로 했다. 위기일수록 투자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2008년의 학습효과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직 특별히 경영전략을 수정할 계획은 없다”며 “올해 23조원으로 책정된 투자 계획도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LG전자 또한 올해 목표했던 4조8000억원 규모의 시설 및 연구개발(R&D) 투자를 예정대로 집행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는 연초에 밝힌 7조3000억원의 투자비를 그대로 집행하기로 했다. 하반기에 적극적인 인수합병(M&A)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롯데, CJ, SK텔레콤, STX는 자금조달 계획에 대한 면밀한 점검에 나섰다.

 이상렬·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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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삼성전자 회장
[現]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1942년

[現] 현대자동차 회장
[現] 기아자동차 회장

193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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