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탄 85세 ‘일본판 호킹’ 고시바 “137억년 전 빅뱅 3초 뒤 우주 보여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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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특별영예교수가 8일 대전 KAIST에서 개막한 아시안 사이언스 캠프에서 강연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137억 년 전 일어난 우주대폭발(Big Bang, 빅뱅) 3초 뒤 갓 태어난 우주 모습을 보여 달라. 이론적으로는 빅뱅 때 나온 중성미자(中性微子·neutrino)의 우주 분포를 정밀하게 관측할 수만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일본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박사’인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85) 도쿄대 특별영예교수가 젊은 과학도들에게 당부한 말이다.

8일 대전 KAIST에서 개막한 아시안 사이언스 캠프(ASC)의 첫 강연자로 나선 자리에서다.

 노령과 소아마비로 불편한 몸 탓에 휠체어를 타고 연단에 올라섰지만 그의 강연은 청중을 사로잡았다. 19개국에서 참가한 192명의 과학도와 석학들은 숨소리도 죽여가며 그의 강연을 경청했다.

 중성미자를 처음 발견해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85세의 거장은 두 시간 가까이 ‘중성미자 천체물리학의 탄생’이라는 주제로 우주 탄생의 흐름을 꿰어냈다. 중성미자의 미래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인류는 현대 과학의 힘을 빌려 빅뱅 이후 약 38만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우주 생성의 비밀을 풀어내고 있다. 빅뱅 이후 처음 뿜어져 나온 빛인 ‘우주배경복사(宇宙背景輻射, cosmic background radiation)’를 정밀하게 관측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고시바 박사는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하듯 빅뱅과 함께 만들어진 중성미자의 우주 분포를 측정할 수 있다면 태초의 우주에 훨씬 더 가까이 근접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중성미자는 태양을 포함한 별에서 쏟아져 내리지만 현재 고성능 검출기로도 일주일에 하나 정도밖에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고시바 박사는 “중성미자를 처음 발견하고 노벨상을 받았을 때 ‘그것을 어디에 써먹을 수 있느냐’라고 물으면 가장 곤혹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실생활에 쓸 곳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중성미자가 없으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원소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므로 인류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고 있다’는 명답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강연이 끝나자 학생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우주가 수축할 수도 있나.” “중성미자 연구가 어렵고 힘들었을 텐데 계속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고시바 박사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왜 우주의 수축을 걱정하느냐. 우주과학자 모두가 우주가 팽창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시켜서 하는 일의 경우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그만두지만,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라.”

대전=박방주 과학전문기자, 김한별 기자

◆ASC=고시바 마사토시, 대만의 리위안저(李遠哲·이원철, 1986년 노벨화학상) 박사가 독일 린다우 섬에서 열리는 노벨상 수상자 캠프 ‘린다우 미팅’에 착안해 만들었다. 2007년 타이베이(대만)에서 첫 캠프가 열린 이후 이번이 5회째다. 올해 대회는 한국물리학회·대한화학회·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기초의학협의회가 주최하고, 중앙일보 등이 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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