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싼 전기요금은 대국민 사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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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심상복
논설위원

가격의 힘은 세다. 싸면 소비가 늘고 비싸면 줄어든다. 경제학의 기본 원리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비싼 기름값 덕에 소비가 줄었다. 올 상반기 석유제품 소비는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2.2% 감소했다. 기름 씀씀이는 2008년 국제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를 넘어서면서 잠시 줄어든 적이 있으나, 그 외에는 해마다 늘어왔다. 어떤 정책을 써도 통하지 않던 소비가 높은 가격엔 무릎을 꿇은 것이다. 상반기 기름 소비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하반기(4억205만 배럴)에 비하면 4.6%나 감소했다.

 석유 가격은 우리 맘대로 할 수 없다. 국제 시세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기요금은 정부 뜻대로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주 바보 같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 비교를 위해 2009년도 요금을 보면 생산원가보다 14%나 싼 ㎾h당 84원이다. 일본(202원)·영국(184원)·미국(115원)보다 월등히 낮다. 주택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48%, 산업용은 55% 수준이다. 원가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파니 장사를 하면 할수록 한전의 적자는 확대된다. 싼 전기료는 정부가 물가를 우려해 억누른 결과다. 서민과 중소기업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줘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이거, 정말 멍청한 논리다. 원가를 밑도는 가격으로 팔아 생기는 적자가 공중으로 사라진다면 좋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고스란히 한전 장부에 빨간 글씨로 남는다. 지난 3년간 한전 적자는 6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공기업의 적자는 그만큼의 세금 투입을 요구한다. 싼 요금으로 인한 적자를 세금으로 메워주는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직도 국민을 위해 전기요금을 낮게 유지한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국가 경제로 봐도 득(得)이 아니라 독(毒)이다. 값이 싸니 마구 써댄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력사용량이 OECD 평균의 1.7배에 달한다. 가정이든 기업이든 대부분의 에너지원을 전기로 삼는다. 밥을 지을 때는 전기밥솥, 커피 끓일 때는 커피포트, 침대에는 전기매트다. 여름철에 등장하던 ‘전력예비율 위험 수준’이란 보도가 지난겨울 나타난 이유이기도 한다. 전기장판·온풍기·전기히터·전기난로 등 모든 난방을 전기에 의존한 결과다. 이 정도가 아니다. 한겨울 비닐하우스에서는 온갖 채소와 꽃들이 자란다. 축산농가와 양식수산업자도 비슷한 덕을 보고 있다. 가스 난방을 시스템에어컨으로 교체한 학교도 크게 늘어났다. 지난 10년간 등유 소비는 반 이하로 줄어든 반면 전력 소비가 68%나 증가한 것이 그 증거물이다. 전기는 고급 에너지다. 냄새나 먼지도 없다. 그래서 가스나 석유에 비해 사용하기 아주 편하다. 그럼에도 값은 싸니 소비가 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이달부터 전기료를 평균 4.9% 올렸다. 도시 4인 가구의 경우 한 달 약 800원 더 내는 정도라고 한다. 올렸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전의 적자와 불안한 물가 사이에서 절묘한 타협을 봤다고 자랑한다. 말장난이다. 전문가들은 왜곡된 전기요금 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소리를 수도 없이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시늉만 냈다. 정치권 입김도 작용했다. 그들은 입만 열면 나라를 위한다지만 나라 경제에 부담만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이 당장 좋아하는 것만 추구하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싼 전기요금의 폐해는 한전 장부를 거쳐 국민 모두에게 청구된다. 소비를 조장함으로써 문제를 더욱 곪게 만든다. 요금을 올려 소비를 줄이는 정책을 펴야 한다. 오른 가격만큼 씀씀이가 줄어들면 가계부담은 늘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문제가 되는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예컨대 요금의 50%를 깎아준다. 그게 소비를 부추기고 뒤로 한전 적자를 메워주는 지금 방식보다 훨씬 낫다.

심상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