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콤비의 독일가곡 마라톤, 사흘간 57곡 달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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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슈베르트는 언어와 음악을 세련된 방법으로 한데 녹여 가곡을 작곡했다. 시(詩)를 사랑하는 바리톤 박흥우(왼쪽), 피아니스트 신수정씨가 이달 슈베르트의 솜씨를 되살려낸다. 서울 방배동 신씨의 연습실에서 두 연주자가 슈베르트 악보를 들고 웃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흘에 57곡. 피아니스트 신수정(69), 바리톤 박흥우(50)씨의 도전 항목이다. 그들이 겨냥한 대상은 슈베르트. 57곡은 슈베르트의 중요한 가곡집에 들어있는 노래를 더한 숫자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20곡, ‘겨울나그네’ 24곡, ‘백조의 노래’ 13곡이다. 두 연주자가 12·14·16일에 나눠 모두 부른다. ‘보리수’ ‘세레나데’ 같은 아름다운 작품이 57곡 속에 빼곡하다.

 신씨와 박씨는 유명한 음악 짝꿍이다. 2004년부터 5월이면 슈만 ‘시인의 사랑’, 12월엔 슈베르트 ‘겨울나그네’를 꼬박 무대에 올렸다. 서울 서초동 모차르트홀에서 7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매해 같은 노래를 하지만 고정 팬이 생겨 청중도 꾸준하다.

 신씨는 “처음엔 사실 즉흥적으로 함께 연주했다”고 말했다. 각각 잘츠부르크와 빈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는 둘은 독일문화원의 한 행사에서 2000년쯤 처음 만났다. 독일 가곡에 대한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고, 즉석에서 연주를 해봤다고 한다.

 박씨의 기억은 간단하다. “누가 따라가고 누가 따라오는 그런 수준의 호흡이 아니었다”고 한다. 서로 음악을 맞추려 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흘러가도 되는 콤비였다는 설명이다.

 신수정씨는 독주자로도 활약하지만, 성악가와 함께하는 독일 가곡에 특별한 관심이 있다. 가곡의 시구(詩句)를 직접 번역해 청중에 나눠주거나 무대 위에 띄운다. 음악과 언어를 동시에 이해해야 가능한 작업이다. “가곡은 말과 음악의 가장 이상적인 결합이다. 이를 동시에 이해하는 과정에 강한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박씨 역시 보통 성악가들이 화려한 오페라를 공부할 때 가곡을 파고들었다. 그는 독일 가곡과 오라토리오로 학위를 받았다. “사실은 어려서부터 독일 가곡에 푹 빠져, 그때 외워놓은 것으로 지금껏 노래하는 것도 많다. 오스트리아로 유학한 것도 가곡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박씨는 가곡 한 곡이 오페라 한 작품에 맞먹는다 생각한다. 시 한편에 붙인 음악에 인생 굴곡과 감정 변화가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 연주자를 묶어준 것은 문학에 대한 관심이다. 슈베르트는 빌헬름 뮐러·하인리히 하이네 등의 시에 곡을 붙여 가곡을 만들었다.

 박씨는 “독일의 정서를 완전히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한국인 2중주가 독일로 역수출되는 날을 꿈꾼다”고 했다. 음반 녹음, 해외 공연을 암시하는 말이다.

 신씨는 “닷새 동안 슈베르트의 3대 가곡집을 모두 한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 것으로 생각한다. 매년 연주하지만 할 때마다 느낌이 다른 가곡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전하고 싶어 만든 무대”라 설명했다. 이들의 ‘겨울나그네’는 올해 말에도 8년째 계속될 것이다.

 외국에도 그들과 비슷한 ‘콤비’가 있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바리톤)와 제럴드 무어(피아니스트), 프리츠 분덜리히(테너)와 후베르트 기젠(피아니스트)은 전설로 기록된 독일 가곡 듀오다. 각자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둘의 묘한 화학적 결합 덕분이기도 하다. 이젠 한국에서도 ‘독일 가곡’ 하면 떠오를 명콤비가 생겼다. 이들이 마련한 ‘슈베르트 주간’은 그 과정 중 하나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공연메모=12일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홀, 14일 오후 2시30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16일 오후 8시 모차르트홀. 02-584-6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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