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인터넷시청률' 조사는 전자상거래 기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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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상황이라 그럴까. 사용자가 이미 1천만을 넘어 연말에 2천만 명이 된다지만 인터넷시장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나 분석, 평가는 아직 뒷전이다. 단지 회원수나 페이지뷰에 의존하는 주먹구구식의 마케팅이나 광고 전략이 수정돼야 할 때가 다가 오고 있다.

네티즌 2천40명의 사이트 방문, 정기적으로 추적

올해 나이 45세. 학부는 사회학과를 졸업했지만 대학원에선 철학과를 전공한 뒤 철학과 강사 생활도 해봤다. 그리고 이젠, 다시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밟는 학생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녀는 한 인터넷 회사의 대표이기도 하다.

이상경 대표가 이끄는 인터넷 메트릭스(www.internetmetrix.com)는 인터넷시장을 조사·평가하는 리서치·마케팅 회사. 네티즌들의 인터넷 이용 행태를 측정·분석·평가해 인터넷 마케팅의 표준을 제시하는 게 주요 업무다.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떠오른 인터넷이지만 변변한 리서치 기관 하나 없다는 판단에서 설립했다.

인터넷 메트릭스는 2천40명의 네티즌 패널 집단을 구성해 정기적으로 일종의 ‘인터넷 시청률’을 조사한다.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 ‘PC Meter’가 이들 패널의 인터넷 사용 궤적을 정밀히 추적해 특정 사이트를 방문한 시간대와 머문 총 시간, 특정 메뉴 이용시간 등을 집계해 준다. 이 데이터를 분석하면 광고주는 효율적인 광고 집행을 할 수 있고, 각 웹 사이트 운영자는 보다 정확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쇼핑몰의 방문자 수와 구성비, 방문 시간대 등을 분석한 결과 신도시 주부들이 오전에 많이 방문한다는 결과가 산출됐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오전 10시에 집중적으로 홈페이지를 업그레이드하되, 주로 신도시 주부를 겨냥한 상품들이나 각종 이벤트 정보를 집중시키는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인터넷은 쌍방향 의사소통이 가능한 매체다. 그리고 가장 개별화될 수 있는 매체다. 게다가 컴퓨터 상에서 모든 활동이 이루어져 자연스럽게 데이터베이스 기술과 접목될 수 있다. 기존 매체에 비해 훨씬 정확하고 강력한 타깃팅(targeting)이 가능한 이유다. 때문에 인터넷 마케팅·광고시장은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큰 시장으로 급부상했다. 미국의 경우 이미 온라인 광고가 옥외 광고 점유율을 넘어섰으며, 2003년에는 케이블TV를 제치고 라디오 광고 점유율의 70%에 육박할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인류의 지적 문화 유산이 자연과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수차례 입버릇처럼 되뇌는 그녀는 사회학, 과학철학 전공자답다. 사회과학도 훌륭하게 인터넷과 접목될 수 있다는 확신을 현실화했기 때문. 그녀는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87년, 몇몇 친구들과 함께 이 회사의 전신인 현대리서치연구소를 설립했다. 당시 대통령 직선제를 앞두고 여론 조사를 했었는데, 피조사원으로부터는 종종 어용기관으로 오해를 받고, 전투경찰에게는 조사자료를 빼앗기는 등 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렇게 설립돼 정치·사회 분야와 마케팅 분야 업무를 해온 현대리서치연구소는 95년부터 불어닥친 정보화 열풍과 함께 변신을 시작한다. 휴대폰등 각종 이동통신기기들과 관련된 리서치 업무가 급증한 것.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당시의 통신혁명을 단순한 기술 진보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이 급속히 대중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인터넷이야말로 수천년 이어져온 문명사가 다시 쓰여지는 전환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 98년 7월부터 연구소 내에 인터넷 리서치팀을 구성해 오늘의 싹을 틔웠다.

그녀는 99년 6월, 현대리서치연구소와 대기업 출신 IT인력들, 대학 교수들과 공동 출자해 조인트 벤처(Joint Venture) 형태로 지금의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이들은 그녀의 표현처럼 ‘화학적으로 서로에게 녹아 있다’. 그만큼 가장 이상적인 팀워크를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다. 여성으로서, 또 인터넷 회사의 최고 경영자(CEO)로선 약간 고령(?)이면서도, 그녀가 훌륭하게 회사를 이끌어갈 수 있는 가장 원천적인 힘이 어디에서 연유되는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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