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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도 행복한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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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소영
도쿄 특파원

중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나는 아버지의 전근으로 브라질과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전학 온 귀국자녀였다. 그런 내가 학교생활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4월 말 고사를 보게 됐다. 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이 10~30점대. 학급석차는 69명 중 48등이었다. 나라를 바꿔 전학을 할 때마다 초반엔 고전을 했던 터였다. 성적 때문에 크게 좌절하지도 실망하지도 않았다.

 충격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학교에서 그 시험석차에 따라 우열반을 나누기로 했단다. 수학과 영어 수업만 공부 잘하는 그룹과 못하는 그룹을 나눠 진행했는데, 48등인 나는 당연히 ‘열(劣)’ 반이었다. 그렇게 얼마간 학교생활을 하면서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예뻐한다는 거였다. 어린 내 눈에 그건 ‘편애’였다. 공부는 못해도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 운동을 잘하는 아이, 노래를 잘하는 학생도 있는데, 왜 선생님들은 꼭 공부를 잘해야 예뻐하는 걸까….

 그래서 한 선생님에게 물어봤다. 공부를 못하는 것도 속상한데, 선생님들의 미움까지 받으면 심정이 어떻겠느냐고. 선생님은 빙긋 웃어 보이더니 “이 녀석아,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해”라며 내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때리고 돌아섰다.

 30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지만, 한국 사회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학교와 직장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최고를 향해 돌진하는 맹렬 사회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한경쟁을 해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이 돼 버렸다.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게 우리의 교육열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가열돼도 괜찮은 것은 분명 아니다.

 우리보다 일찍이 저출산·고령화사회에 진입하고 오늘날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정체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에서 보는 한국은 활력이 넘치는 부러운 존재다. 한국 기업들의 활약도 그렇지만 유럽과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높은 대학진학률(83%), 세계에서 활약하는 스포츠·한류스타 등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한국은 레벨이 다르다”고 평가한다.

 그렇다고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일본의 한 TV 퀴즈프로그램에서 사회 각 분야 최고의 국가를 맞히는 문제가 나왔다. “쌀 수출량이 가장 많은 나라(정답 태국)” “출생아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아프가니스탄)” 등 제법 진지한 시사문제들이 출제됐다. 그중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 “세계에서 성형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라는 문제가 나왔다. 다른 문제에서 고전했던 출연자들이 이 두 문제는 망설임 없이 ‘한국’이라고 답하는 모습을 보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한 달 전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한국은 전 국민이 신경쇠약에 걸리기 직전 상태”라고 우리 사회를 분석했고, 세계보건기구(WHO)와 OECD 조사 결과 한국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행복지수가 OECD국가 중 꼴찌라는 결과도 나왔다. ‘최고’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자살로 치닫는 우리의 현실은 경쟁사회의 역기능적 부산물이다.

 어느 사회나 1등을 주목한다. 그렇다고 2등부터 꼴찌까지가 불행해야 하는 건 아니다. 1등만이 살아남는 경쟁구도 속에서는 1등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

박소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