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일본의 벤처산업] 上. 재패니즈 드림 20대 벤처기업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벤처 열풍이 미국이나 한국에서만 부는 것은 아니다. '제조업의 강자' 일본에서도 벤처 열기가 만만찮게 뜨겁다.

정보기술(IT)의 전반적인 발전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고, 인터넷 보급율도 아직 낮다는 점을 들어 일본을 마치 정보화 사회의 후진국 취급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실리콘밸리나 T밸리처럼 일본에도 '네트밸리'가 있고 무수한 벤처기업들이 여기에 둥지를 틀고 '재패니즈 드림'을 불태우고 있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일본 벤처산업의 실상을 3회에 걸쳐 점검한다.

지난 24일 오전, 얼굴에 여드름이 듬성듬성 난 앳된 젊은이가 정장 차림으로 도쿄(東京)증권거래소로 들어섰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간부들은 그를 정중한 태도로 맞이했다.

이날 일본의 벤처기업 증권시장인 마더스에 상장된 사이버 에이전트의 후지타 스스무(藤田晉.27)사장이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벤처 기업가라고 하면 흔히 소프트뱅크의 손정의(孫正義)사장이나 히카리통신의 시게다 야스미쓰(重田康光)사장을 꼽는다. 그러나 일본에서 이들은 이미 완전히 성공을 굳힌 대기업가로 통한다.

진짜 새싹들은 지금 한창 자라나고 있다. 후지타도 그중 한명이다. 그는 1997년 대학 졸업후 채용 컨설팅회사에 입사했다.

일에 미쳐 새벽 5시 출근, 새벽 1시 퇴근하는 생활을 했고, 입사 3개월 만에 실적이 동기생의 4~5배에 이르렀다.

잘나가던 그는 그러나 딱 1년만에 때려치웠다.

"매여있는 월급쟁이는 싫다. 마음대로 펄펄 날아보고 싶다" 는 게 독립의 이유였다. 처음엔 만류하던 사장이 나중엔 출자금조로 7백만엔을 쥐어줬고, 1998년 3월 인터넷 광고대행사인 사이버 에이전트를 설립했다.

대기업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던 인터넷 광고시장에 뛰어든 그는 고속성장을 일궈냈다. 사원은 40명 뿐이지만 인터넷 광고업계에서 3위를 달리고 있다.

28일 현재 시가총액은 6백억엔. 지분율을 따진 그의 몫은 2백억엔이 넘는다.

앞으로 10년간 죽을 각오로 일해 시가총액 10조엔의 큰 기업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중소기업 상대의 인터넷 아웃소싱 업체인 클레이피시의 마쓰시마 이사오(松島庸.26)사장. 그는 일본의 최연소 상장사 대표다.

대학을 중퇴한 뒤 잡지기자로 기업을 취재하다가 인터넷 분야에 눈을 떴다.

1995년 회사를 차렸으나 인터넷 보급률이 낮아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던 중 그의 장래성을 높이 산 히카리통신.이토추상사 등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으면서 자본금 5억7천만엔짜리 기업을 단숨에 23억엔짜리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매출은 3억엔에 불과하지만 시가총액은 무려 2천2백38억엔에 이른다. 그는 곧 해외로 진출해 국제 사업가로 커나갈 꿈을 불태우고 있다.

일본에는 이들과 같은 20~30대 예비 상장사 대표들이 수두룩하다.

인터넷 경매업체 DeNA의 난바 토모코(南場智子.38), 일본 최대의 인터넷 쇼핑몰 라쿠텐(樂天)의 미키타니 히로시(三木谷裕史.35), 인터넷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인포테리아의 히라노 요이치로(平野洋一郞.37), 인터넷 상거래업체 프론트라인닷JP의 후지모토 겐타로(藤元健太郞.33), 인터넷 기술개발업체 온더엣지의 호리에 다카후미(堀江貴文.27), 인터넷 비지니스 인큐베이터 회사 넷에이지의 니시가와 기요시(西川潔)등등-. 모두 일본의 인터넷 벤처업계를 이끌어가는 톱 리더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답한 월급쟁이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회사를 차려 하고 싶은 일을 해보겠다는 도전정신, 그리고 이왕 이 바닥에 뛰어든 이상 세계 최일류로 도약하겠다는 승부근성으로 꽉 차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평생직장인 회사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똘똘 뭉쳐 다른 쪽으로는 눈길도 돌리지 않았던 선배 세대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는 "이들은 어릴 때부터 게임과 만화를 벗삼아 살아온 세대이기 때문에 공상가적인 자질이 탁월하다" 고 분석하기도 했다.

바로 이런 기질이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인터넷 열풍을 타고 일본의 보수적인 기업풍토에 벤처의 꽃을 피우는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도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