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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도가와의 85년 대작 〈카무이의 검〉

중앙일보

입력

때는 1800년도 말경. 강따라 떠내려오던 지로를 데려다 길러준 어머니와 그녀의 딸이 영문도 모른채 닌자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 마을사람들은 이들 모녀의 죽음을 지로의 소행으로 단정, 이때부터 지로는 세상의 모든이로부터의 도망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때 의지할곳없는 지로를 거두어준 텐카이의 말을 믿고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를 죽인 한조대신 자신의 아버지인 타로오자를 카무이의 검으로 죽인지도 모르는 지로는 텐카이의 명을 받고 자신의 뿌리를 찾아 길을 떠난다.

시시리누카강과 카무이누프리산사이의 아이누족 마을인 시노피리카 부락에서 자신의 생모를 만나게된 지로는 그제서야 생모와의 대화를 통하여 자신이 생부인 타로오자를 죽였음을, 그리고 자신의 진짜원수는 텐카이임을 알게되고 통탄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몰래 집으로 스며든 닌자가 약을 탄줄도 모르고 지로와 어머니는 저녁밥을 나눠먹고 정신을 잃는다. 약에 취한 자신의 눈앞에서 닌자가 어머니를 난자하는 것을 보면서도 몸이 마비되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지로. 또다시 시노피리카 부락의 사람들로부터 어머니를 죽인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도망치게 된다. 하지만 지로는 자신의 생모를 죽인 싱고를 자신의 어머니가 죽은 방법과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한다.

안도 쇼오자를 통하여 카무이의 검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알게된 지로는 보물이 있는것으로 추정되는 산타카타리나섬을 찾아 미국으로 떠나게되고, 프랑스인인 줄리 치코를 만나 그녀의 생명의 은인이 된다.
동명의 술집인 산타카타리나 살롱에서의 결투를 통하여 알게된 마크 트웨인 기자와의 대화를 통하여 지로는 산타카타리나섬을 둘러싼 전설을 듣게된다. 즉, 17세기말의 바다를 지배한 해적, 캡틴 키드가 자신이 잡혀 형자의 이슬로 사라지기전 1억달러 상당의 보물을 숨긴 장소라고 유력시되는 곳이 산타카타리나 섬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구해준 흑인노예 샘과 함께 캘리포니아호로 산타카타리나 섬에 도착한 지로가 찾은 캡틴 키드의 보물은 기대치 이하인 한개의 궤짝에 가득한 금화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나타난 텐카이는 지로와의 싸움에서 패한바 있던 오유키가 자신과는 배다른 누나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오유키는 지로를 죽이라는 텐카이의 명을 거역하고 텐카이와의 대결을 선택하며 그와 함께 최후를 맞이한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 텐카이가 앉은 의자가 열쇠였던가? 캡틴 키드의 숨겨진 엄청난 양의 보물이 모습을 드려내게되고, 지로는 오유키의 무덤을 뒤로하고 보물과 함께 일본으로 향한다. 하지만 죽은 텐카이는 실제 텐카이의 그림자(카게)였음이 후에 밝혀진다.

지로의 친할아버지 (그는 또한 텐카이의 스승이기도 하다)가 이끄는 이가닌자단을 고용케 된 지로. 그리고 캡틴키드의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텐카이의 세력에 대적할수 있게된 지로는 텐카이와의 일전을 통하여 그를 쓰러뜨리고 조용히 사라진다.

카도가와의 대작

카도가와의 제 1, 2의 애니메이션인 〈환마대전〉(린타로) 및 〈소년 케니야〉(오바야시 노부히코)에 이은 3번째 작품인 〈카무이의 검〉은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당시 일본에서의 애니매이션 대중성 (popularity)를 고려할 때, 가장 최근의 〈신세기 에뒵겔리온〉이전까지의 작품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 아닌가 한다.
지금이야 2시간이 넘는 애니메이션이 지브리등(〈원령공주〉는 〈카무이의 검〉을 의식하였는지, 1분 많은 133분의 상영시간 이었다.)을 통하여 제작되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상영시간으로 제작된 카무이의 검은 긴 상영시간을 꽉 채워넣은 연출과 결코 진부하지 않은 긴장감 있는 스토리로 대작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정치적 메시지

하지만 카무이의 검을 대작으로 만든 것은 단지 긴 상영시간만은 아니었다. 일본서 캄챠카 반도를 거친 미국까지의 대장정. 단순한 닌자 애니메이션을 넘어선 역사를 가됫한 스토리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장면에서 만나게 된 자신의 아버지인 타로오자가 몸담았던 사츠마의 보스 사이고의 얼굴을 원수인 텐카이의 얼굴과 교차시키는 장면은 지로의, 그리고 이전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었던 린타로의 아나키즘적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결국에는 얼굴만 바뀔뿐,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는" 정치세력에의 흡수를 거부한 지로 및 애니메이션의 근간을 흐르는 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라 할수있다.

〈수병위인풍첩〉(1993)에서 보여준것은 이미 카무이의 검(1985)에서 모두 보여주었다.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의 〈수병위인풍첩〉은 가장 일본적인 애니메이션으로 알려져있다. 하드코어와 하드고어를 적절히 배합하여 일본 고유의 리미티드 애니메이션 방식을 십분 발휘하면서도 (최근의 〈포켓몬〉식의 눈에 확연히 띄는 경제적 방식이 아닌)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보여주고 있는 〈수병위인풍첩〉으로 카와지리 감독은 일약 일본을 이끄는 애니메이션 감독의 반열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수병위인풍첩〉과는 달리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는 〈카무이의 검〉을 보고있노라면, 연출면에 있어서 〈수병위인풍첩〉이 〈카무이의 검〉 2편임을 알아차리기에는 시간이 그리 걸리지 않는다. 〈수병위인풍첩〉에서 보여준 도저히 실사영화에선 보여주기 힘든 카메라 앵글과 구도, 경제적인 이유로 도입되는 번쩍거리는 배경과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와 함께 그려지는 집중선등은 오히려 단점이 되기보단 장점으로 관객의 시선을 잡아놓기에 충분하다. 〈수병위인풍첩〉에서 접목한 하드코어를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들이 〈카무이의 검〉에서 이미 보여지고 있다. 카와지리 감독은 단지 〈카무이의 검〉에다 하드코어를 접목시켜 재연출시킨것에 불과하다고도 볼 수 있다.

뛰어난 연출력

〈카무이의 검〉을 통하여 린타로 감독은 그 어느 작품에서도 볼수없었던 사무라이 액션장면의 연출을 보여준다. 오유키와 지로의 대결장면은 이미 전설이 되었으며 이외에도 마츠마에 3인조와 지로와의 대결 및 마지막 텐카이와 지로와의 대결에서도 롱 숏에서 클로우즈 업까지의 장면을 끊김없이 연출함으로써 그 역동성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생모와의 저녁밥을 먹은 뒤 신체의 마비장면을 그린 장면에선 마치 대니보일감독의 〈트레인스포팅〉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약에 취한 인간의 시각을 잘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데즈카 오사무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최근의 〈포켓몬스터〉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있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써 그 장점을 모아놓은 표본을 〈카무이의 검〉은 보여주고 있다.

하드고어의 시초

하드고어 애니메이션으로 많은 분들이 〈강식장갑 가이버〉나 〈북두의 권〉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보다 먼저 〈카무이의 검〉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역시 카와지리 감독의 〈요수도시〉나 〈수병위인풍첩〉에서 그 모든 것들을 보여주고있는 하드고어의 형태는 〈카무이의 검〉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곰이나 사람을 상하 좌우로 갈기갈기 찢는다던가, 정수리에 검을 꽂아 사람을 죽이는 형태. 대결시퀀스중의 흘리는 붉은 피를 과장되게 그린다던가 하는장면들은 하드고어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앞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수병위인풍첩〉은 〈카무이의 검〉에서 보여준 뛰어난 연출에서 하드코어를 더한 것 이외에는 새로운것이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7년간의 기획과 3년간의 제작과정을 통하여 탄생된, 카도가와와 린타로의 〈카무이의 검〉. 단순한 대작이 차원을 넘어 그속에 담고있는 내용 역시 작금의 국회의원선거를 얼마 남겨두고 있지않은 우리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얼굴만 바뀔 뿐이고 실제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는 있지 않다고 정치를 불신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 비추어 보더라도 〈카무이의 검〉은 우리에게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는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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