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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시간 날아온 탱크 “영혼 동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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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 진출 초기의 최경주 선수(왼쪽)와 하용조 목사. 최 선수는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미국에서 하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기도해 달라고 했다. 1999년 미국 PGA 투어 카드를 따낼 때 최 선수는 하 목사의 기도 덕에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했다고 한다. [두란노 제공]


2일 소천한 하용조 목사의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온누리교회. 2일 이곳을 찾은 2000여 명의 추모 인사 중에는 미국에서 활동 중인 프로 골퍼 최경주(41) 선수도 있었다. 어려운 발걸음이었다. 최경주 선수는 4일 개막하는 상금 850만 달러(약 90억원)짜리 빅이벤트인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을 위해 미국 오하이오주에 머물다 급히 비행기를 탔다.

 오후 10시30분쯤 빈소에 도착한 최경주 선수는 “하용조 목사님이 뇌출혈로 생명이 위태로우시다는 전화를 받고 다음날 아침 첫 비행기로 한국으로 왔다”고 말했다. 최경주 선수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 하 목사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최경주 선수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목사님은 기도로 나를 지탱해 주신 분”이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최경주는 3일 아침 일찍 다시 대회장인 오하이오주를 향해 떠났다. 비행 시간은 15시간이 넘는다. 경기는 한국시간으로 4일 밤 시작된다.

 공교롭게도 꼭 4년 전인 2007년 WGC 브리지스톤 대회를 앞두고 최경주는 먼 길을 날아와 하 목사를 만났다. 하 목사는 일본 선교를 위해 도쿄에서 한류 연예인들이 대거 출연한 ‘러브 소나타’에 그를 초대했는데 최경주 선수는 그때도 흔쾌히 비행기를 탔다.

 당시는 최경주 선수에게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해 잭 니클라우스가 주최하는 메모리얼 토너먼트와 타이거 우즈가 주최한 AT&T 내셔널에서 우승해 상금랭킹 1위까지 바라볼 수 있는 때였다. 그러나 최경주 선수는 시차로 인해 컨디션이 나빠질 위험 등을 감수하고 이 행사에 참가했다. 이후 브리지스톤 대회에 출전했다. 최경주는 “4년 전엔 하 목사님의 몸과 마음을 함께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의 영혼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3년부터다. 당시 무명 프로였던 최경주 선수는 부인 김현정(40)씨와 연애를 하던 중이었다. 김씨가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데이트를 하지 않겠다고 해서 온누리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늉만 했는데 점점 큰 무대로 갈수록 믿음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한다. 최경주 선수는 “종교가 없을 때 내가 받는 불안감의 수치가 10이라면 지금은 5~6 정도”라고 했다. 99년 하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최경주 선수는 “99년 말 가장 긴장된다는 미국 투어 카드를 딸 때 하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편안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가 3일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온누리교회에 마련된 고(故) 하용조 목사 빈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미국 골프계를 개척하면서 최경주 선수는 종교와 하 목사에게 더욱 의지하게 됐다. 최경주 선수는 “골프 코스에서는 다른 선수와 함께 걷지만 마음 속의 동반자는 하 목사님”이라고 했다. 그의 에이전트인 IMG 임만성 이사는 “하 목사님의 존재는 최 프로께 상당히 큰 자리를 가지고 있다. 미국에 처음 가서 힘들고 울음이 나올 때 전화 통화로 위로도 받고 용기를 주셨던 분”이라고 말했다. 하용조 목사는 생전 최경주 선수의 자선 재단의 고문 겸 이사로 활동했다.

 한편 3일 이명박 대통령이 김윤옥 여사와 함께 분향소를 방문해 조문했다. 전날엔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이용훈 대법원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김영길 한동대 총장,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배우 김자옥·강석우·엄지원씨, 작곡가 주영훈씨 등도 조문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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