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74) 베트남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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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 주연의 영화 ‘소령 강재구’(1966). 자신을 희생해 부대원들을 구한 강재구 소령의 장례식 장면이다. 강 소령의 아들로는 김정훈이 나왔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요즘 고엽제 문제가 이슈다. 그만큼 베트남 전쟁의 상처는 깊다. 나는 1966년 영화 ‘소령 강재구’로 베트남 전쟁과 간접이나마 관계를 맺었다. 베트남 파병에 자원했으나 출발 전 수류탄 투척 훈련 중 부하의 실수로 수류탄이 중대원 한 가운데로 떨어지자 몸으로 수류탄을 덮친 강재구(1937~65) 역을 맡았다.

 64년 9월 태권도 교관단과 의료단 파견으로 시작된 베트남 파병은 당시에도 큰 논란이 됐다. 십자군 전쟁도 아닌데 왜 우리 젊은이들이 용병으로 피를 흘려야 하나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곤혹스런 상황에 빠졌다. 파병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미국과의 관계를 생각해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비둘기부대(의료 부대)·맹호부대(전투 부대)·청룡부대(해병대) 등이 차례로 베트남으로 향했다.

 베트남 전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채명신(85) 장군이다. 65년 파월한국군사령관으로 취임한 그는 베트남 땅을 처음 밟는 장병들에게 “살아서 돌아가”라는 일성을 내질렀다. 젊은이들이 그곳에 오는 걸 가슴 아파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69년 귀국했을 때,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견제에 들어간 군부는 야금야금 그의 힘을 빼놓았다. 결국 그는 72년 군복을 벗었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병사는 모두 TV 한 대와 철제 트렁크 하나씩을 가져왔다. 트렁크 안에는 각종 탄피를 가득 담았다. 러시아 마트료슈카 인형처럼, 가장 큰 105㎜ 포탄 껍데기 안에 작은 크기의 탄피를 차곡차곡 쌓았다. 모두들 이런 트렁크를 가지고 타는 바람에 화물군함이 위험할 정도였다. 포탄 껍질은 구리 합금으로 한국에서 고가로 팔렸다. 톱 클래스 가수들도 베트남 공연 후 대부분 TV를 가지고 귀국했다. 우리 군대는 베트남 전쟁을 통해 막강하게 성장했다. 전쟁으로 가장 이익을 본 나라는 군수물자보급로 역할을 한 일본이다.

 나는 65·66년 국군의 날, 광화문에서 베트남 파병 군인들에게 꽃다발을 걸어주었다. 박 대통령과 정부 각료가 모두 나와 대대적인 행사를 벌였다.

 ‘소령 강재구’를 촬영하면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육사생도 1년차인 강재구가 처음 집에 와서 식구들과 밥 먹는 대목이다. 강재구는 밥숟가락을 직각으로 퍼서 입에 넣는다. “너 왜 이러냐”며 부모들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그 장면을 재미있게 찍었다. 육사 생도가 된 체험도 했다. 육사 생도의 정복을 입으면 허리를 굽히지 못한다. 바지가 명치까지 올라온다. 그것을 멜빵으로 고정시킨다. 4년 동안 항상 가슴 펴고, 꼿꼿하게 허리 세우게 된다.

 멋쟁이들 사이에선 속칭 ‘월남 전투복’이 유행했다. 점퍼는 독충이 많은 밀림에서 입을 수 있도록 기장이 길면서도 감촉과 디자인이 참 좋았다. ‘군번 없는 용사’ ‘만추’의 이만희 감독은 월남 전투복의 애호가였다. ‘소령 강재구’에서 강 소령의 아내 역은 고은아가, 세 살 아들 역은 아역배우 김정훈이 맡았다. 나는 안성기·손창민·송승환 등을 아역배우 시절부터 지켜보았다. 김정훈은 이들 중에서 어릴 적 얼굴이 가장 예뻤다. 그러나 그는 어른이 돼서도 동안이 변하지 않은 탓에 배우로는 대성하지 못했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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