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금융감독체제 도대체 뭐가 달라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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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명박 대통령(MB)이 5월 4일 금융감독원을 방문, 부산저축은행의 엄청난 비리를 언급하며 그동안 도대체 뭘 했느냐고 질타했다. 금융감독시스템이 잘못됐다고 보고 개혁방안을 내놓으라는 엄명이 떨어졌고, 닷새 뒤 총리실에 태스크포스(TF)가 출범했다. TF팀은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와 임채민 국무총리실장을 공동 팀장으로, 민간 전문가 6명과 정부 관계자 5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이 거의 석 달간 작업한 결과가 2일 공개됐다.

 부산저축은행 사태의 본질은 금감원이 여러 차례 검사했지만 불법대출·분식회계 등 천문학적인 비리를 사전에 전혀 밝혀내지 못한 데 있다. 따라서 감독체제 개편이 핵심 과제였다. 이 문제에 대해 TF팀은 예금보험공사의 검사권한을 강화하는 동시에 금감원의 재량권은 줄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형 저축은행에 대해서는 금감원과 예보의 공동검사를 의무화하고, 예보가 단독조사할 수 있는 대상도 확대함으로써 금감원의 독단을 견제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말은 그럴 듯하나 내용을 따져보면 빈약하기 짝이 없다. 기본적으로 금감원과 예보는 어느 정도 이해가 맞아 떨어지는 사이다. 여기에다 예보에는 제대로 된 검사를 할 수 있는 능력과 일손도 부족하다. 금감원을 진정 견제하려면 그런 기능을 한국은행에 주는 것이 더 낫다. 기존 관행으로 볼 때 이번 안으로 금감원 중심의 감독·검사가 달라질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금감원이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를 동시에 수행함으로써 이해가 상충한다는 지적이 있으나 그렇다고 별도의 소비자 보호기구를 만들려는 움직임은 경계해야 한다. 개혁을 빙자한 또 하나의 정부기구 확대를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보다는 현재 사실상 금감원이 갖고 있는 금융회사 제재권을 금융위원회로 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대해진 금감원 권한을 줄이는 차원에서다. 금융회사를 징계하는 제재심의위원회 결정을 공개하도록 한 것은 업계와의 유착 소지를 없애는 동시에 감독과 검사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잘한 일이다. 저축은행의 생사를 가르는 적기 시정조치 근거를 문서로 남기도록 한 것은 금감원의 ‘봐주기’로 부실 저축은행이 연명하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금감원 직원들이 퇴직 후 산하 금융회사로 취업하는 걸 제한키로 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들은 재임 중 퇴임 후 갈 자리를 관리하는 바람에 감독과 검사가 부실해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금감원의 ‘낙하산 감사’에 제동이 걸리는 대신 감사원이나 다른 정부기관 출신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면 의미는 반감될 것이다. TF팀은 금감원 직원들의 비리를 막기 위한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보고, 부정 연루 직원은 퇴출시키고 비리발생 위험 부서의 근무 기한은 3년에서 2년으로 줄이도록 했다. 이런 걸 포함한 비리 임직원의 내부 고발 활성화 등은 5월 4일 금감원이 자체 발표한 개혁안에 다 들어있던 내용이다. 무엇보다 이번 개혁안은 가장 핵심이어야 할 금융감독체제 개편이 미흡하다는 점에서 알맹이가 빠졌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