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전체가 ‘유물 전시관’ 덕동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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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기북면 오덕1리 덕동민속전시관에서 이동진 관장이 주자대전 등 선조가 남긴 유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경북 포항시 기북면 오덕1리 덕동마을. 청송군과 인접한 포항의 북쪽, 산으로 둘러싸인 반촌이다. 계곡을 따라 전봇대보다 키가 큰 노송들이 군락을 이뤄 마을의 역사를 말해 준다. 30호쯤 되는 마을 어귀에 한옥으로 지은 덕동민속전시관이 있다.

 2일 이동진(81) 관장이 굳게 닫힌 전시관의 문을 열고 다시 셔터를 올렸다. 이중 잠금장치다. 전시관에는 민속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갓이며 베틀·그릇·현판 등에서 1970년대 흑백TV까지 진열돼 있다. 대부분 이 마을과 인근 기북면 사람들이 쓰던 물건이다. 눈에 띄는 건 고문서와 근대 자료 등 기록물이다. 이 마을이 보유한 2500여 건의 기록물 중 4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서원의 내력을 적은 고문서부터 200년 된 호적단자, 1911년 덕동마을을 측량한 도면까지 마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도난을 우려해 대부분 복사본을 전시하고 있다.

 이 관장은 “선조의 손때가 묻은 귀중한 자료인 진본은 별도 금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덕동마을의 역사는 조선시대 유학자 이언적의 동생 이언괄의 4대 손인 이강이 경주 양동마을에서 20㎞(50리) 떨어진 이곳에 거처를 정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360여 년간 대가 이어지면서 여강 이씨 집성촌이 됐다. 덕동민속전시관에 진열된 자료는 대부분 이 관장이 반세기에 걸쳐 수집한 것들이다. 50여 년 전 양동에서 덕동으로 옮겨 온 이씨는 당시 귀중한 마을 자료들이 훼손되고 없어지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자료 수집에 나섰다. 마을 곳곳을 뒤지며 자료를 찾았다. 마을의 상징물인 용계정(龍溪亭)도 샅샅이 살폈다. 용계정은 조선 숙종 때 지은 정자다.

 “천장 깊숙한 곳에서 뭔가 눈에 띄었죠. 궤짝이었어요.”

 유물이 쏟아졌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사라진 세덕사(世德祠)의 내력이 담긴 문건이 들어 있었다. 문건과 함께 문서를 나르던 행랑과 푸른색 삼베로 지은 제사 의복, 효자손 등 100여 점이 쏟아졌다. 당시 선조가 관련 문건을 지키기 위해 꽁꽁 숨긴 것이었다.

 수집한 자료가 창고에 쌓이자 그는 92년 동사무소 2층에 임시 전시관을 마련했다. 이런 노력은 중앙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이들 자료 중 67점은 경북도 민속자료 552호로 지정됐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최근 덕동마을을 ‘기록사랑마을’ 제4호로 지정했다.

포항=송의호 기자

◆기록사랑마을=국가기록원이 2008년부터 마을의 역사·문화·인물 등을 담은 기록물을 특색 있게 보유한 마을을 발굴·선정하는 사업이다. 1호는 강원도 정선군 조동8리, 2호는 경기도 파주시 파주마을, 3호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성리다. 기록사랑마을로 지정되면 국가가 기록물을 소독 처리하고 훼손 기록물을 복원하며, 기록 자원 등으로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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