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대우구조조정추진협의회 오호근 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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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외국 돈을 가장 많이 떼어먹은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오호근(吳浩根.58) 대우계열 구조조정추진협의회 의장이 바로 그 주인공일 것이다.

지난 1월 그는 대우 외채협상에서 돈을 잘못 빌려준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며 외국채권단에 29억달러 이상(채권액의 60%)을 손해보라고 요구했다.

우리 정부를 압박하며 6개월을 버텨왔던 해외 채권단은 '홍콩에서의 마지막 협상' 테이블에서 결국 그의 배짱과 원칙에 손을 들고야 말았다.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 장관은 그런 吳의장에게 대우자동차 매각을 비롯, 대우 계열사 구조조정의 사령탑을 맡겼다.

야당 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 교수에 종합금융사 사장을 거치는 등 독특한 전력을 지닌 吳의장은 "대우그룹 구조조정의 마무리를 맡는 일은 애국의 기회" 라고 말한다.

- 대우차 매각 진행상황부터 얘기를 시작할까요. 야당이나 노조 등 일각에서는 해외매각 자체를 국부(國富)유출이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말도 안됩니다.산업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나올 수 없는 주장입니다. 해외매각이란 용어 자체도 맞지 않습니다. 만일 외국기업이 대우차를 인수한다면 전략적인 투자자가 국내에 투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매각이라고 하면 팔고 없어지는 것으로 흔히들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입니다. 외국업체가 대우차를 사는 것은 대우를 더 키우기 위해서 입니다. 대우의 인지도.제품.노하우.인재의 가치 등을 인정하기 때문에 돈을 내는 것이고 이는 곧 국내 자동차 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믿는 외국투자자가 투자한다는 의미입니다. "

- 해외매각이 이뤄지면 기존 협력업체나 납품업체의 도산이 잇따를 것이란 주장도 있는데요.

"더더욱 말도 안됩니다. 외국사가 부품을 한국에 실어나르려면 차값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또 국내 부품업체들의 기술수준은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이 있습니다. 대우차 인수기업 입장에선 가까운 곳에 싸고 좋은 물건이 있는데 굳이 먼 곳에서 비싸게 부품을 조달해 들여올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국내 협력.납품업체엔 오히려 그간 재벌기업과 이어왔던 종속관계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전문기업으로 변신할 기회가 생기는 셈입니다. 세계적인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려면 그만큼 기술도 그들이 요구하는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가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 그러면 대우차의 새 주인을 가려내기 위한 뚜렷한 기준이 있습니까.

"우선 대우를 더 키울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GM.포드 등 현재 5곳의 신청업체 중 이런 자격을 갖춘 곳이 분명 있습니다. 물론 자격이 없는 곳도 포함돼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이들의 제안 내용입니다.

대우차를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로 키울 만큼 확실한 투자의사가 있는지를 따져봐야겠지요. 국내기업이냐 외국기업이냐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 매각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1차 실사를 끝내면 5개 업체가 각각 인수제안서를 내게 됩니다. 이 작업은 오는 5월말까지 마무리될 예정입니다. 1차 인수제안서에서 특별히 조건을 잘 써낸 곳이 있으면 그 업체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합니다.

그러나 비슷한 제안을 한 곳이 두 곳 이상이면 두 곳을 모두 선정해 2차 실사와 2차 제안서를 받게 됩니다. 넉넉잡아 올 상반기 중에는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입니다. "

- '우선협상대상자 '선정방식은 어떻게 됩니까.

"공개.투명이 원칙입니다. 업계.금융계 등의 전문가들로 독립된 평가위원회를 구성해 선정과정과 이유 등을 낱낱히 공개할 방침입니다. "

- 대우차 매각 후 국내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전망한다면.

"큰 틀에서 봐야 합니다. 전세계 자동차 시장의 수요는 연간 5천만대지만 공급은 약 7천만대로 '팔자' 에 비해 2천만대 가량이 많습니다. 웬만한 기술과 경쟁력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세계적인 자동차업체들이 합병이나 전략적 제휴를 계속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또 국가마다 환경에 관련된 규제가 강화되면서 늦어도 2010년께엔 미국.유럽을 비롯, 전세계 시장이 무공해차로 대체될 전망입니다.

GM과 도요타는 각각 50억달러씩 10년간 1백억달러를 들여 무공해 내연기관 개발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세계최대 규모의 회사들마저 합작해야 할 정도니 연간 2백만~3백만대의 생산력을 가진 회사로서는 이런 막대한 기술투자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연간 1백50만대 정도 밖에는 소화하지 못하는 작은 시장입니다.

결국 수출을 통해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데, 이게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규모로는 어려우니 비교우위가 있는 쪽에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예컨대 뛰어난 제조업 기술과 질 좋은 인력, 철강.항만.도로 등 좋은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면 그게 바로 경쟁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생산하면 부가가치의 90%를 우리가 갖게 됩니다. 차 회사가 아니라 차 생산이 돈을 벌어준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

- 연말까지 8개월 동안만 의장직을 맡기로 했는데, 그 기간 내에 전자.중공업.㈜대우 등' 대우계열'의 구조조정이 모두 매듭지어진다는 의미입니까.

"자동차 매각이 상반기 중 끝나면 일단 큰 윤곽은 그리게 됩니다. 나머지 계열사는 우선 교통정리가 필요합니다. 대우가 확장과정에서 이것저것 붙여놓는 바람에 엉뚱한 회사나 사업이 서로 얽히고 설켜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풀고, 팔 것은 팔고 살릴 것은 살리는데 8개월이면 충분합니다. "

- 구조조정 후 대우 계열사의 전망은 어떻습니까.

"올해 안에 흑자가 나는 회사가 나올 겁니다. 이건 농담입니다만 지금쯤 대우 계열사의 주식을 사두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죠. 직원들이 절치부심 열심히 뛰어주고 있습니다. 채권단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지면 회생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봅니다. "

- 채권단이 약정을 어기고 지원에 소극적인데 대책이 있습니까.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통해 이득을 본 경험이 국내 금융기관엔 아직까지 한번도 없었습니다.

기업이 완전히 망하기 전에 한 푼이라도 건지자는 게 타성처럼 돼버렸습니다. 또 임기 중에 가능한 한 손해나는 일을 하지말자는 임원들의 보신주의도 여전합니다. 그런걸 버려야 합니다.

우선 설득을 통해 적극적인 지원을 끌어낼 생각입니다. 항간에선 약정위반으로 지원금액의 30%까지 위약금을 물릴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빚을 주식으로 전환하고 나면 채권단이 대우의 공동주인이 됩니다. 같이 꾸려나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

- 이달 말이면 2년간 맡아온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위원장직을 물러나게 되는데, 64대 그룹의 워크아웃을 결산하신다면.

"실패.성공만을 따진다면 실패가 아니니까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는 있겠습니다. 국내 은행들이 처음으로 대주주의 황제식 경영이라는 잘못된 기업 지배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된 점과, 은행들이 스스로 그런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점이 무엇보다 중요한 소득입니다.

현재 78개의 워크아웃 기업 가운데 절반가량의 지배구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과거 오너였던 사람이 전문경영인이 된 곳도 있습니다. 상반기 중 최소한 25곳, 많으면 28개 기업이 워크아웃에서 조기 졸업합니다.

하반기에는 현재의 절반정도만 남게 될 겁니다. 그만큼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진거죠. 다만 워크아웃 플랜 하나하나를 보면 기업.은행이 이해관계에 따라 터무니없는 채무조정을 해주는 등 대단히 불만스러웠던 점도 꽤 있었습니다.

어쨌든 은행이 스스로 워크아웃을 주도할 수 있게 돼야 합니다. 기업을 알고 꾸려나갈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직 그런 은행이 많지 않다는 게 남은 과제입니다. "

정리〓이정재,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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