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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구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9호 02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니 책상 주위에 신간이 한가득입니다. 그중 상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박스 속에는 책이 세 권 들어있었습니다. 『박용구-한반도 르네상스의 기획자』(사진), 『전혁림-다도해의 물빛 화가』, 『장민호-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 국립예술자료원이 펴낸 예술사 구술총서 『예술인·生』(수류산방)이었습니다. 한국 근대 예술의 기틀을 다진 원로 예술가들의 생애를 분야별 전문가들이 구술채록해 엮은 책이죠. 책이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 책임연구자인 민경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편집후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한국 근·현대 예술의 형성 과정에 있어서 공헌이 많으신 원로들께서는 한결같이 하시고 싶은 이야기,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고 또 이 분들이 남겨야 할 중요한 말씀이 너무 많은데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그런 기회를 별로 만들어 드리지 못했다….”

단순히 하시는 말씀을 받아 적은 책이 아니었습니다. 올해 97세인 박용구 선생님의 책 125쪽에는 ‘최승희의 평양 제일관 공연과 앙가주망 춤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가 생생한 육성으로 적혀있습니다. 그 왼쪽 124쪽에는 최승희와 그의 남편 안막에 대한 소개, 앙가주망 춤의 원조로 꼽히는 독일 무용가 마리 비그만과 쿠르트 요스에 대한 설명이 사진과 함께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습니다.

이렇게 실하게 만든 책을 보면 마음 한구석으로 짜릿한 전율 같은 게 올라옵니다. 이 책들을 다 읽으려면 여름 휴가가 좀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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