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기후변화 … 법원도 인정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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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법률에 구체적인 근거가 없더라도 기상변화를 이유로 땅 소유주의 건축 허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행정당국의 조치는 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기후변화가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을 반영해 재해 발생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때는 법 규정에 얽매이지 말고 재량권을 갖고 재해 예방 행정을 펼쳐야 한다는 취지다.

 29일 서울고법에 따르면 춘천행정부(부장 김인겸)는 최근 강원도 홍천군 주민 유모씨가 “법규상 기준에 포함되지 않은 ‘홍수 때 침수 위험’을 들어 산지 전용을 불허한 것은 위법하다”며 홍천군수를 상대로 낸 건축신고 반려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유씨는 2009년 5월 자신이 소유한 임야 1800여㎡에 “단독주택 6채를 신축하겠다”며 산지 전용 및 건축허가를 홍천군청에 신청했다. 그러나 구청 측이 “홍수 때 침수 위험이 있어 재해 발생이 예상되고 자연경관의 보전 유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반려하자 유씨는 소송을 냈었다.

재판부는 “산지 전용을 허가할지 여부는 관할 관청의 재량행위”라며 “법령상의 산림 훼손 금지·제한 지역에 해당하지 않고 명문 근거가 없더라도 공익상 필요가 인정될 때에는 허가를 거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기상 이변이 잦아지는 요즘 추세에 비춰 집중호우 등으로 건축 예정지의 침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건축허가 신청을 반려한 것은 수긍이 간다”고 했다. 유씨가 산지 전용을 신청한 땅이 홍천강 줄기의 곡선부에 위치해 수해 우려가 있고, 150년간 강수량을 기준으로 했을 때 최대 홍수위보다 낮은 저지대에 해당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는 “ 국제산사태학회의 화두는 기후변화에 따르는 산사태의 심각성과 대책 마련”이라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 우기가 많아지면서 산사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판결은 행정기관이 풀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법원이 길을 터준 것”이라며 “행정을 선도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판결로 지방자치단체의 방재 업무에는 힘이 실릴 전망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동안 사유재산권을 앞세운 토지 소유주들과의 갈등이 있어 왔다”며 “ 공무원들이 소신을 갖고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강수 기자

◆산지전용(山地轉用)=숲 가꾸기·벌채·토석 등을 위해 산지의 형질을 변경하는 것. 통상 택지·묘역 조성, 골프·스키장 건립 등을 위해 형질 변경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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