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경 ‘MB 현장주의’ 역주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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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경

정부가 26일 유가 안정을 위해 발표한 대안 주유소 도입, 대형마트 셀프 주유소 확대 정책과 관련해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유소 신설을 가로막는 규제는 그대로인데 정부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설익은 정책만 내놨다는 지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장주의를 강조하지만 정작 부처는 현장의 사정을 전혀 모르고 이를 역주행하는 탁상행정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이다.

 대형마트 업계 관계자는 27일 “대형마트 주유소 설립에 필요한 인허가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들의 태도는 지식경제부의 정책 발표 이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며 “현장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탁상행정”이라고 말했다. 그간 대형마트 셀프 주유소를 늘린다는 정부만 믿고 주유소 한 곳에 5억~10억원씩 투자했는데 지자체에 가로막혀 송사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실제로 대형마트 주유소의 신규 출점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전북 전주시를 비롯한 각급 지방자치단체들은 조례와 고시를 통해 대형마트 건물과 주유소 간 거리가 최소 25~50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영유아보육법도 ‘인접 50m 이내에는 주유소가 들어설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대형마트 주유소 출점을 막기 위해 일부러 기존 주유소 운영자가 마트 인근 건물에 어린이집을 내는 일도 있다. 같은 이유 탓에 대안 주유소 신설도 어렵다.

 지역 내 반발을 우려한 지자체의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이마트는 전남 순천시와, 롯데마트는 전남 여수시와 마트 주유소 허가를 놓고 각각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형마트 업계는 사실상 주유소 신규 출점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점포 내 부지 여건과 지역사회의 반발, 또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규제를 감안하면 새로 문을 열 수 있는 주유소는 다섯 개가 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마트가 5개, 롯데마트가 2개, 농협 하나로마트가 3곳의 마트 주유소를 운영 중이다.

 대형마트 주유소를 늘리겠다는 정부 발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난 3월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서 마트 주유소를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새로 문을 연 마트 주유소는 단 한 곳도 없다. 이 때문에 정부 내부에서조차 자성의 소리가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결국 경쟁 활성화가 핵심인데 마트 주유소는 지자체에 막히고, 자가폴 주유소도 기존 정유사에 눌리니 대안 주유소라는 방법을 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광호 교수는 “서민을 위한다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내린 정책 결정은 결국 정책 자체의 신뢰와 권위를 잃게 할 뿐”이라 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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