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 교체시기 늦춘 KTX … 국토부 “내년 상반기까지 고장 더 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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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1일 KTX 산천 224호 열차가 광명역 전방 500m 상행선 일직터널에서 선로를 이탈해 멈춰서 있는 모습. [연합뉴스]


중국 고속철 사고로 시속 300㎞로 질주 중인 KTX에 대한 안전성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KTX는 2004년 개통 후 한 해 20여 건이던 사고가 지난해 53건으로 급증한 데 이어 올해는 이달 현재 38건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기환 KTX 안전강화대책 점검반장은 26일 “내년 상반기까지는 계속 고장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4일 코레일에 내년 상반기까지 고장 원인 부품 교체를 지시한 국토해양부 이광희 철도기술안전과장은 “부품을 일시에 다 바꾸긴 어려워 내년 상반기까지는 고장이 더 나올 수 있다”는 입장이다. ‘7㎜ 볼트’ 하나를 채우지 않아 KTX 열차가 탈선했던 올 2월 광명역 사고를 경험한 승객들은 “목숨을 내놓고 타란 말이냐”며 걱정한다.

 올 들어 KTX 사고가 잦아진 것은 프랑스에서 들여와 2004년부터 운행한 KTX-1은 사용한 지 10년이 넘어 노후화되고 운행 2년째인 국산 KTX-산천은 품질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KTX는 개통 원년인 2004년 가장 많은 81건의 사고를 냈다. 이후 매년 감소해 20여 건으로까지 줄었다. 그러다 지난해 3월 국산 기술로 개발한 KTX-산천이 투입되면서 53건으로 늘었다. 53건 중 28건이 산천에서 났다. 하지만 코레일은 안전대책을 강화하기는커녕 부품 교체 시기를 늦추고 검수(檢修) 주기를 완화하는 거꾸로 된 처방책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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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3월 취임한 허준영 코레일 사장은 3500㎞를 주행할 때마다 실시하던 KTX의 일상 검수 주기를 지난해부터 5000㎞ 이상으로 연장했다. 또 KTX의 주요 부품 180여 개 가운데 80여 개의 교체 시기를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KTX 개통 후 7년간의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선진국 수준에 맞춰 조정하는 것”이란 게 코레일 임석규 언론홍보처장의 해명이다.

 하지만 철도 전문가들은 “KTX는 교량·터널·산 등을 많이 지나 운행 여건이 좋지 않은데 프랑스나 일본 같은 철도 선진국에 맞춰 부품 교체나 검수 주기를 조정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본과 독일은 고속철도 운영 경험이 각각 47년과 20년이 된다.

허준영 사장

 현대로템이 90% 이상을 국산화해 제작한 KTX-산천의 품질 문제도 제기된다. 특히 KTX-산천이 낸 50건의 사고 중 가장 많은 것이 모터블록에서 비롯됐다. 지난 17일 황악터널과 부산역에서 KTX가 멈춰선 것도 모터블록 고장이 원인이었다. 모터블록은 열차가 움직일 수 있게 전기량을 조절해 주는 일종의 변전소 역할을 하는 핵심 장치다.

 하지만 KTX-산천에 장착된 모터블록은 툭하면 고장을 일으키지만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KTX-산천에 들어가는 모터블록은 현대중공업이 독점 생산한다. 서울산업대 철도전문대학원 이희성 교수는 “모터블록을 국산화했다고 하지만 잦은 고장을 내는 걸 보면 진짜 기술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정비 수준 향상도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코레일 김흥성 대변인은 KTX가 멈춰 설 때마다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은 시간이 걸린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철도기술연구원 관계자는 “고속철도의 사고 원인이 복잡해 문제점을 정확히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코레일 노사는 정비 수준 향상 방안은 뒷전인 채 인력 감축 공방에만 매달려 있다. 코레일 노조 이영익 위원장은 “사고가 빈발하는 것은 경찰청장 출신인 허 사장이 조직 정비를 명분으로 정비·선로·신호 등 핵심 인력 5500여 명의 감축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김 대변인은 “정비 인력은 허 사장 취임 후 119명이 오히려 늘었다”며 반박했다. 철도기술연구원 관계자는 “고속철도의 핵심 기술인 전기·전자 제어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며 “예전의 닦고 조이고 기름 치던 정비 인력 숫자만 놓고 싸워봐야 KTX 안전을 확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코레일을 감독할 국토부도 어정쩡한 입장이다. 국토부는 KTX의 광명역 탈선사고 이후 항공기 수준의 정비체계를 구축하겠다며 46개의 추진 과제를 내놨다. 이후 사고가 줄지 않자 24일 186억원을 들여 주요 부품을 조기에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46개 과제는 60%만 이행됐고, 부품 교체비 186억원도 확보하지 못했다. 한국교통연구원 김연규 박사는 “차량 운행 스케줄에 비해 차량이 부족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종합점검이나 정비를 제대로 할 여유가 없는 게 현실”이라며 “운행 스케줄을 일부 줄이고 차량에 대한 집중 점검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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